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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Aug 14. 2022

나는 지금 좋은 교사인가?

보상심리는 내게 독이었을지도



  주말만 되면 내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 것인가? 를 고민하는 초임기 교사가 나 말고 또 있을까를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부분도 많지만 그만큼 아쉬운 부분이 눈앞에 아른거릴 때, 그리고 내가 생각해 온 교육적인 부분과 현실이 다른 것을 실감할 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게 될수록 침착하게 나의 오늘을 돌아보며 내일을 떠올리게 된다. 처음에는 취미처럼,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이 대학 합격 후의 로망을 꿈꾸듯 시작한 생각이었다면 이제는 현실 도피를 위한 방어기제로 이 고민들을 내 곁에 친구처럼 삼아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차마 고개를 들고 남들에게, 특히 지인들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나의 몹시도 가난한 이 생각들을, 오늘도 토해내듯 지껄이는 내 교사 인생에서의 부끄러움들을 낙인처럼 찍어본다.


 



1. 고등학교 때는 남들 다 수시전형으로 대학을 가기 때문에 사교육 한 번 받지 않았고, 나는 그중에서도 학원을 다녀가며 대비했었기에 못해도 4년제 대학은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 생각으로 인해, 4년제라는 이유로 만족스럽지 않은 학과에 진학한 것이 나의 보상심리의 시작이었다. 내가 재학했던 고등학교 분위기 상, 남들 안 가는 학원을 다녔으니 적어도 4년제는 가야 한다는 아집이었다. 전문대 유아교육과를 붙었지만 차마 갈 수 없다고 생각하며 우회한 탓으로, 나는 스무 살 가을에 반수를 하여 다시 대학에 입학해야 했다. 


2. 두 번째는, 어쩌면 다른 친구들이 이미 취업하여 경력을 쌓을 시기에 굳이 유아교육과로 재진학을 했으므로 나는 더 좋은 기관으로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시작한 임용고시 준비였다. 물론 임용고시 공부를 하며 나의 좁쌀 같았던 교육관을 더 확고히 하게 되고, 제대로 된 유아교육을 공부하게 되었다는 큰 배움을 얻었지만 당시 시작의 이유 중 하나가 이 보상심리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같은 나이 또래의 취업 시기보다 1년 뒤처진 만큼 공립 현장으로 첫 교직생활을 시작해야만 한다는 고집이었다.


3. 세 번째는 임용고시에서 낙방하고 취업처로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었다. 사립유치원으로 취업을 하기에는 내가 그간 임용고시에 들인 시간과 노력이 의미 없는 일이 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그리고 교사 대우를 해준다는 기관으로 취업해야 했다. 동기들보다 돈을 더 받고, 교사를 존중해주는 그런 곳으로 말이다. 그래서 유치원이 아닌 직장어린이집에 원서를 넣게 되었다. 4년제 학력도 인정받고, 사립유치원에서 대체로 주지 않는다는 시간 외 수당도 챙겨 받고, 정시출근과 정시퇴근이 일반적인 곳에 재직하게 되며 큰 만족스러움을 느끼고 있지만, 영아반을 맡게 될 수도 있다는 아쉬움과 실제 영아반을 맡게 된 현재 나의 모습으로 인해 또 한 번의 고민을 질질 미련처럼 품고 있는 현실이다.


4. 그리고 또 하나는 저축이었다. 남들보다 2-3년씩 늦게 취업한 만큼 모은 돈 하나 없이 용돈으로만 연명하던 삶을 청산하기 시작하며, 월지급 급여의 대부분을 적금하게 된 것은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전문대를 들어가고, 4년제 유아교육과를 나와 사립유치원에 들어간 주변의 많은 이들에 비해 들인 노력과 시간이 무색하게도. 결과적으로 '성공적인'취업을 하지 못한 내가 그들과 대등해질 방법은 저축액 하나뿐이었다. 단시간 내에 그들이 대략적으로 2-3년 동안 모았을 법한 금액을 모으는 것.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정말 모질게도 점령했던 것 같다.




 '남들보다' 이 한 마디가 주는 무력감이 나를 뒤덮을 때, 나는 언제나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아니, 그 당시에는 그것이 내게 가장 필요한 결정이고 맞는 결정이었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돌아볼 때, 내가 상대적인 기준을 토대로 나의 인생을 결정하려 들지 않았더라면 조금은 더 나은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느 주말과 같이 습관처럼 자리 잡은 구인공고와 유치원 정보 수집을 하던 내가 돌연 과거 학창 시절 포트폴리오를 찾기 시작한 것은, '이직할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내 마음속에서 떠오른 한 마디 때문이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부터 갑자기 학위증과 교원자격증, 학창 시절 수상경력과 실습 및 교구 등의 자료들을 스캔하여 별도의 파일에 분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교육실습 때 지도교사 선생님으로부터 받았던 피드백을 살펴보게 되었다. 


 아득히도 멀어진 유아들과의 활동 기억에, 나는 급작스럽게 추억에 잠기기 시작했다. 나도 이렇게 칭찬받는 실습교사였지. 유아들과 소통하며 어떤 활동이 좋을지 고민했던 날이 있었지. 그리고 실습기간 중 받았던 칭찬 문구들을 만지작거리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왜 지금 이 삶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그리고 실습 마지막 날 받았던 지도교사 조언 문구를 보고서는 뭔가 욱신거림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보다 발전하는 선생님 모습을 보니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갑자기 속에서 뭔가 끓어올라 끅끅대며 울고 말았다. 누가 봐도 그다지 울만큼의 메시지는 아닌데. 실습 마지막 날에 해줄 수 있는 그저 그런 멘트일 확률도 높은데. 2년 전의 실습 때 받았던 지도교사 조언란을 보고 오늘의 내가 울음을 보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직업을 단순히 직업으로서, 생업으로서만 여기며 사는 간단한 방법도 있지만 나는 그러하지 못한 사람인 것 같다.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고, 무언가 알려주고 함께 소통하며 단단한 커리어를 가진 교사로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지금의 내가 꼭- 그저 꽤나 좋은 대우를 받는 베이비시터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게 보육교사로서 가져도 되는 마인드인가를 떠올리는 이 순간마저도, 제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많은 보육교사 선생님들께 죄송하게도. 


 그래서 그것이었다. 돌고 돌아, 나는 지금 좋은 교사인가? 이런 마인드를 가진 나인데. 나는 교사로서 잘하고 있는 것인가? 에 대한 것이었다. 마음이 헛헛해서, 내가 바라던 교사가 이것이 맞는가에 대한 고민이 끝나지 않는 현실이 퍽 쓴 한약 같았다. 보상심리로 점철된 나의 교직인생의 오늘은, 그래서 만족스러운가. 남들이 괜찮다- 좋다 하는 말들을 오롯이 빼고 나 자신은 내가 꿈꿔왔던 좋은 교사로 성장하고 있는가. 


우연히 SNS를 보고 경력 확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도 한 번 검색해 보았다. 7개월 14일. 오늘을 기준으로 내가 가진 교사 경력이었다.  


7개월 14일 동안 나는, 아직 그 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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