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개월 여 기간 동안의 이야기와 이직
11월 중순과 말 쯔음, 브런치에 나의 고민들을 적어보며 혼란스러운 생존기를 굳이 정리해보고자 했었다. 그리고 그 끝은 근속이었고, 나는 그 후로도 많은 나날을 불안감과 걱정에 악몽을 꾸기도 하고 주변 동기 선생님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 말 그대로 살아있는 걱정인형다운 삶을 살았다. 계속해서 다니기로 결정한 이상 후회는 없어야 하건만, '어찌 그리 찜찜하고 불안하기만 할까'에 대한 고민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디 가서 부끄러울만한 기관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대내외적으로 규모 면이나 복지 면에서 나쁘지 않다고 알려진 곳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음에도 개인적이거나 또 공식적인 원 내 크고 작은 일들로 인해 도통 안심할 수 없는 매일이 스쳐 지나간 몇 달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방 안에 오도카니 앉아 내가 바라는 교사로서의 모습과 지금 나의 삶, 그리고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 쯤, 다른 연령의 친하지 않았던 동기 선생님들과 식사 자리를 갖게 되었는데, 나는 이 날을 기점으로 이직을 확실히 결심하게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 묻고 물어 내린 결정도 아니고, 책을 읽다가 '유레카!' 하고 떠오른 결정도 아니고 겨우 동기 선생님들과의 식사자리 한 번으로 일 년 내내 고민하던 문제를 끝맺게 되다니, 이게 무슨 얼빠지는 일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내게는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더 고민하기를 포기하게 된 날이었던 것은 한 치 거짓도 없는 사실이니까.
크게 무슨 부정적인 접점이 있었다거나 반대로 조언을 들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선생님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에 무리가 있다고 느껴졌고, 어쩌면 이분들과 조직생활을 하며 동료교사 그 이상의 끈끈한 동기애 등을 느끼며 일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친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만일 원치 않는 연령과 파트너 교사를 만나게 된다면 내가 과연 복지가 아무리 좋다고 한들 이곳의 생활을 버틸 수 있을까? 그건 아니었다. 나는 그 어떠한 조건보다 사람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함께하는 파트너 교사가 안 맞다면 마음 맞는 동기 선생님들이라도 곁에 있어야 버틸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작년 22년 첫 사회생활을 하며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날 다른 연령 선생님들과의 자리에서 그분들이 실수하신 건 전혀 없었지만, 나는 어떠한 의미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어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원치 않는 파트너 교사 또는 연령에 배정될 우려가 있어 불안감에 힘들던 시절이었는데, 결정을 번복한 이상 지체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매스컴을 통해 연일 전해지는 유아교육 업계의 정치적 동향이 심상치 않았던 점을 포함하여, 내가 꿈꾸던 교사로서의 삶을 당장 경험하고 싶다는 열망이 더해져 유치원에 당장 원서를 쓰게 되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척척 이루어지진 않았다. 내가 비록 내로라하는 좋은 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학력에 좋은 학점, 유명한 직장어린이집 경력,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낮은 호봉까지. 관리자의 입장에서 겉보기에 나쁘지 않을 뿐 아니라 스스로 임용공부를 통해 얻은 많은 지식과 열정적인 성향이 있으니, 결코 뒤처질 만한 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최근 유치원들이 많이 폐원을 하고, 코로나를 겪으며 이직하는 교사의 수가 줄어들어 담임교사의 경우 2-3년 차 경력직만을 채용하고 있었다. 또한 부담임+종일반 담임교사의 경우에도 대학을 갓 졸업한 신규교사를 선호하는 분위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미 가고 싶었던 유치원 곳곳에 원서를 10개 이상 넣고 회신이 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을 쯤부터였다.
나는 신졸 교사들에 비해서는 임용공부 및 개인적인 사유로 인해 나이가 조금 더 있었고, 담임교사 우대사항에 적힌 경력보다는 적은 경력을 가지고 있는 애매한 지원자였던 것이다. 점차 우리 업계도 이직과 취업이 어려워지고 있다는데, 내가 가고 싶은 기관에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어 12월 말부터는 악명 높다는 유치원에도 원서를 넣고, 부담임 교사로도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휴가날과 퇴근 후 바쁘게 면접을 보러 다녔다. 연말 바쁘게 몰아치는 행사와 아이들 관련 서류를 하면서 동시에 면접까지 보러 다니는 것은 정말 고된 일이었다. 그래서 여하튼. 나는 어떤 곳에서는 채용하기 조금 아쉬운 사람이었을 것이고, 또 어떤 곳에서는 나쁘지 않게 보였을 테니 불합격과 합격 모두 손에 쥐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참 운이 좋게도 원했던 기관에서 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총 3곳으로부터의 합격 통지를 받게 되었는데, 힘들다고 소문난 곳의 만 3세 반 정담임/면접 분위기와 원장님의 교육철학이 너무 잘 맞았던 유치원의 종일반 교사/놀이중심 교육과정을 착실히 운영하면서도 규모가 있는 기관의 정담임. 세 곳 중 나는 맨 마지막 기관으로 취업을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두 번째 기관의 원장님과의 면접이 아직도 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 다만 가능한 정담임으로 유치원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다는 점이 끝내 마음을 돌리게 만들었다. 아쉬운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힘들어 보임에도 3번째 기관을 고르게 된 것은 전반적인 이미지와 규모, 커리큘럼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3번째 기관은 학부모님들 인기가 많은 기관이었다. '학부모가 선호하는 기관 = 교사가 힘든 기관'이라는 말은 교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많이 알려진 법칙이다. 그럼에도 힘든 길을 스스로 걷더라도. 내가 원하던 교사가 이것이 맞는지를 고민하기에는- 꽤 적당한 시작이라고 생각되었다.
아직 연령도, 반배정도 받지 못했고 나는 2월 말 첫 출근을 앞두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현재 재직 중인 곳에서의 학기 마무리를 2월 말까지 다 채우고 퇴사해야 하기에, 단 1초도 쉴 날이 없을 2월 말-3월 초이지만. 원담임으로, 정말 내 반 내 아이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생존기의 시작을 앞두며. 3월부터는 내 브런치의 생존기 2년 차 교사로서의 기록을 남겨가 보려 한다.
쉬운 것은 없을 테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삶보다 더 많이 어렵고, 힘들고, 고되며 심지어는 울 날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결정한 이상 내가 받아들이고 감당해야만 하겠지. 어려운 결정을 내렸지만 지금의 나에겐 이 결정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하며, 부디 새로 가게 될 나의 직장이 조금은 그래도 교사를 아끼는 곳이기를, 또 교사로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선생님들이 많은 곳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처음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