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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Feb 27. 2023

유치원에 처음 온 유아와 교사의 만남

역량에 비해 맡겨진 것이 많을 때의 책임감



 유치원으로의 이직을 했다.


 나는 만 3세 유치원에 처음 입학하는 18명 어린이들의 유일무이한 담임교사가 되었다. 어린이집에 다니며 느끼지 못한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의 담임교사가 드디어 된 것이다. 그렇게 유치원에 처음 온 교사와, 유치원에 처음 온 유아가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번 주 3일, 첫 출근을 했다. 신학기 준비기간으로, 새로운 자신의 학급을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묵은 때 제거, 책상 및 교구장 닦기, 교실 내 화장실 청소, 교구 및 바구니 털고 닦기, 영역 재배치 등 남들 다 하는 그 일련의 신학기 준비 기간의 교사로서의 삶을 살았다. 직접적으로 유아들을 만나지는 않았지만, 화장실 한 번 가기 어려울 정도로 바쁜 이틀이었다. 특히 나는 입학하기 전 사전 정보 파악을 위해 전화상담을 오전 중에 해야 했기 때문에 더욱이나 교실 정비에 온 힘을 다할 수가 없었다. 불가항력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전화상담조차 쉬운 것이 아니었다. 기존에 재직하던 곳에서 근무하며 밤낮 휴게시간을 쪼개 입학 안내카드를 만들어야 했고, 눈치 보며 기존 어린이집에서 입학 전 학부모 전화 상담을 해야 하기도 했다. 그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새로 갖게 된 이 교실의 청결 상태가 그리 좋지 못했고, 내 일은 자연히 두 배, 세 배가 되었다. 다른 반 선생님들이 각자 능숙하게 신학기 준비를 하는데, 나는 혼자 전화상담 하나만으로도 벅차 끙끙대는 이틀이 이어졌다. 전화상담 시 문의 내용에 대해 연령 주임 선생님께 여쭤보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고, 영역 재배치를 하자니 또 오랜만에 유아반 반배치를 해야 하는 실정이라 감이 잡히지 않았다. 또 그 어떤 누구도 내게 피드백해 주지도, 교실 배치방법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았다. 더 이상 이 교실에 나의 '짝꿍', '파트너' 선생님은 없었으니까.




"선생님, 방과후 과정 차량 이용 유아가 하원을 도보하원이랑 섞어서 하는 것 가능할까요?"

"선생님! 어린이집 다녔다 오는 경우 아이행복카드 준비할 때 변경 신청을 해야 하는 게 있나요?"

"원복 추가구매하고 싶으시다는데 원복이면 셔츠, 치마 말고도 후드티나 조끼도 포함일까요?"

"룰루랄라 프로그램(이 원의 특색프로그램) 시작일은 언제일까요..?"

"차량 예행연습 이용하면 이 날은 등원은 안 하는 건가요?"

"보내주신 이름 라벨 사진은 정확히 어디, 어디에 부착해야 할까요?"




  계속된 질문 공세에, 나는 공지 톡방에 고지된 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물어본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했고 감사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누가 봐도 초임'이 되어 보기도 했다. 경력을 가지고 이직했다고는 하나 일의 업무 내용도, 연령도, 시스템도 다 다른 공간에서 적응하는 것은 그냥 초임으로서의 시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학부모와 통화 시 조금 덜 떨고, 오티 행사에서 철면피로 유아들에게 오버액션을 하며 미션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 그래, 맞다. 출근 3일 차에 학부모님을 동반한 유치원 미션을 진행하는 간단한 행사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교실 정비가 버거웠다. 행사 대형으로 정비해야 했고, 대본 및 흐름을 익혀 두어야 했고, 유아들 앞에서 진행을 해야 했다. 밝은 톤의 목소리로 오버 액션을 하며. 이게 과연 맞는 것인지 모른 채로 그냥 원맨쇼를 하는 유튜버가 된 기분을 느꼈다. 다행히도 20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는 간단한 행사라버틸 수 있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 어찌 뚝딱대며 그 상황을 타개했을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기존에 재직하던 곳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형태의 오리엔테이션을 겪고, 이게 맞나를 고민할 새도 없었다. 그냥 몰아치는 바쁜 상황과 오롯이 나 혼자 해결해 내야만 하는 이 형국이 부담스럽고 무거운 돌 아래 깔린 기분이었다. 거리가 떨어진 유치원으로 이직하게 됨에 따라 시작한 자취도 녹록지 않았다. 아직 집기구가 다 도착하지 않아 엉성하고 추레했다. 빛도 잘 들지 않는 작은 북향 원룸 안에 오도카니 앉아 그냥 눈물이 났다. 밥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삼일 간 평소 먹는 양의 1/3도 먹지 못했다. 대식가라 불리는 내가 김밥 한 줄을 채 다 먹지 못하고 입맛이 없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돌이켜 보면, 다른 선생님들이 많이 도와주신 것은 맞다. 프린트해야 할 놀잇감 사진을 모두 코팅까지 해서 전달해 주셨었고, 붙이는 것도 도와주셨다.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면 귀찮으실텐데 다 대답해 주셨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남의 손까지 빌리게 만든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완벽주의를 표방하지만 완벽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상황에서도 나는 무능력하고 어리바리한 인간이 되어 많은 분들의 '손이 가는 새로 온 교사'가 된 것만 같았다. 선생님들 분위기도 좋았고, 행사 전이라 야근한다고 밥도 시켜주시고 일도 직접 중간관리자 선생님들이 도와주시며 소매 걷어붙이고 나서 주셨는데. 감사 인사를 하면 너스레를 떨며 어깨동무하고 원래 친했던 양 분위기를 풀어주시는 분들이셔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간 나는 많은 보호를 받고, 아낌을 받으며 1년 2개월의 인턴 교사 생활을 한 것만 같았다. 그런 내가 이제는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오롯이 서서 모든 책임을 다 떠맡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오티가 끝난 직후였다. 옆반 많은 선생님들이 나를 도와주셨지만, 명확히 그곳 안에서 (가칭) 하늘반은 내 소관이었고, 내 반이었다. 


 새 시작은 꽤나 바쁘고도 명확하게 내게 가르침을 주었다. 정신 차리라고, 이제까지와의 삶과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부족함 많은 내가 20명에 가까운 아이들을 통솔하며 안전하고 즐겁게 교실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마음이 한껏 무거워지는 밤이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연령 주임 선생님, 동일 연령 선생님, 함께 입사한 경력직 선생님, 그 외 중간관리자 선생님들까지. 어린이집에서의 교사 간 분위기와는 또 다른 어떤 분위기 속에서 감사한 인연을 만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내 또 다른 시작이 모쪼록 크게 나를 다치게 하는 결정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하나의 담임교사, <원 앤 온리> 교사가 되었으니 마땅히 그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정신 차리자.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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