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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리 Mar 18. 2023

2년 차 초임교사

적응기간을 마치고 본격적인 새 학기를 보내고 있는 초임 같은 2년 차.




 바쁜 신학기가 시작된 지도 2주가량이 지났다. 나는 온전히 다섯 살 채움반의 담임교사로 근무하며 정말이지 정신없고 바쁜 나날을 살았다. 2년 차라는 단어와 초임교사라는 단어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내 친한 친구가 자신의 올 해를 가리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듣고 뇌리에 박힌 단어였다. 당시에는 ' 2년 차 초임이 어디 있어, 말이 되냐?'라고 말하며 한껏 비웃듯 놀렸지만,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니 그 누구보다 2년 차 초임에 가까운 것은 나였지 않나 싶었다.


 한 연령의 담임교사로서 1년을 보낸 초임교사가 이듬해에 다른 연령을 맡더라도 원의 체계나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발달부터 수업까지 초임과 마찬가지일 텐데, 나는 어린이집에서 유치원으로, 만 1세에서 만 3세 담임으로, 투담임에서 원담임으로 1년 만에 상황이 전면 바뀐 것이니 거의 작년의 기억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물론 은연중에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 학부모님을 대하는 모습 등에서 작년 교사생활을 시작했을 때의 면모가 나왔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정확한 것은 아직도 나는 초임 같고, 모르는 것들이 많아서 자꾸만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직한 유치원은 2주가량 아이들도 교육과정 시간을 조정하여 적응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었다. 나 역시 정규 시간보다 짧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 만나며 조금씩 체계를 익히고, 또 점진적으로 시간을 늘려가며 적응을 준비할 수 있어 무척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특성화 프로그램 등 본격적인 특별활동은 정규 교육과정이 진행되기 시작하는 다음 주부터 시작이기 때문에, 그것과 관련해 더 정신없고 바쁜 매일매일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정신을 다시금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 반 아이 중 1명이 금요일에 강당에서 소변실수를 했다. 또 자유놀이 시간에 속옷에 대변실수를 했다. 같은 날이었고 그날은 이런저런 배부될 자료 및 물품들이 많은 바쁜 금요일이었다. 더구나 놓쳤던 건지 안내가 없었던 건지 한 주간 진행했었어야 하는 과학활동 키트 활동을 하지 못해 예정에 없던 만들기 활동을 부랴부랴 진행하려니 속이 타들어가는 줄로만 알았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같이 짜증을 내고, 울기도 하고,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기도 했지만 그날이야말로 내가 울고 싶은 날이었다. 내가 만난 슈퍼 부담임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법을 따라야 하듯, 이 유치원에 입사한 이상 나 역시 이 원의 커리큘럼 및 매뉴얼을 따라야만 한다. 정신없다는 이유로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다행히도 차량 및 하원 실수는 없었다. 잊을 뻔한 적이 있기는 했지만 무사히 넘어갔었다. 차량실수가 아닌 도보하원 유아를 안 데리고 나온 정도였기 때문에 정말 다행이었다. 다시 들어가서 데리고 나오면 되는 거니까. 아무튼 큰 실수는 없었지만 그에 준하는 정신없는 '큰 실수를 할 뻔했던 적'이 있기는 했으니 많은 주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던 한 주였다.


 나는 원체가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니 예상 밖의 무언가가 급작스럽게 실행되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정도가 높은 편이다. 유아들의 특성이야 인내하고 넘어갈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지만, 예정에 없던 사진촬영을 해야 하거나, 계획되지 않았던 활동을 급히 진행해야 하는 등의 과정은 적잖은 힘이 드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스템이 그렇게 굴러가고 있으니, 나 역시 자세히 안내되지 않는다면 더 자세히 구체적으로 여쭤봐 가며 살아남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동적으로 있다가는 자칫 무지함에서 시작하지만 결론은 실수가 잦은 교사-라는 낙인효과를 맛볼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 확 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초임교사는 아이들에게는 보다 통제적이고, 엄격하고, 제한을 많이 둠과 동시에 원장 및 관리자 등 다른 선생님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 있다. 나는 경력을 가지고 입사한 2년 차 교사임에도 이와 같은 과정이 꽤나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으니, 2년 차 초임이 아무래도 맞는가 보다. 2년 차 초임이면 어떤가, 단기간에 두 연령의 차이를 몸소 느끼며 체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는데. 긍정적으로 여기며 이 초임 같은 시기를 또 한 발 한 발 이겨내 가보면 될 것이다. 다음 주 정규 일과도 실수하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는 한 주가 되기를 몹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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