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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Nov 07. 2023

빼앗긴 집중력

내가 우울증인 게 가장 억울할 때

우울증으로 여러 방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그중 가장 큰 요소는

뇌기능이 저하되었다는 것

내 뇌기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느낄 때마다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신체능력은 원래도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신체기능의 저하는 힘들었지만 덜 속상했다.




하지만 뇌 기능은 달랐다.

이해력, 구조화, 뇌의 반응 속도, 암기력, 멍함

그중에서도 가장 심한 타격은 집중력이었다.

나는 어느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했다.


집중력이 떨어졌으니 책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읽은 후 감상을 머리로 정리하고 글로 옮기는 것도,

무언가 단서를 주었을 때 기억을 떠올리는 속도도,

줄줄 외워버리던 암기력도 모두 사라졌다.

내 뇌는 일하는 척만 하고 금세 파업해버리곤 했다.

내내 멍했다.


멍한 와중에 내가 멍해졌다는 변화를 알아챈 것

만이라도 다행으로 여겨야 하는 걸까?





가장 처음 뇌기능 저하를 느낀 순간은

교육대학원 입시를 준비할 때였다.

유아교육 전공 대신, 학부와 다른 ‘상담심리’라는

전공을 준비하게 되었다.


대학원은 돈만 내면 다 들여보내주는 줄 알았는데

경쟁률은 상상초월이었고, 심리학 학부 수준의 전공

지식을 갖춰야 면접 고득점이 가능했다.

면접을 고득점 하지 못한다면 나는 승산이 없었다.

이름값 높은 학부를 나오지 않았고,

자대생도 아니고,

심지어 심리학 전공생도 아니었으니,



내겐 상담심리 전공 공부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다시 임고생의 마음이 되어 공부를 시작했고

내 상태는 충격적이었다.

예전처럼 읽고 바로 이해가 되지도 않고

여러 번 읽었는데 내용이 아닌 활자만 해독한 느낌.




쌩쌩 돌아가던 내 뇌는 우울증에 잡아먹혔다.

설상가상으로 길어야 30분을 넘기지 못하는 집중력

몇 시간씩 몰입하던 이전의 나는 이제 없었다.

절망이었지만 별 수 있나

30분 공부하고 눕고 30분 공부하고 눕고

내 기준에선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하지 못했다.


결국 입시에서 고배를 마시고,

재수 끝에 추가합격으로 교육대학원에 합격했다.

그리고는 긴 강의시간을 집중하지 못하는 나와

마주쳤다.

다행히 첫 학기에 들었던 과목은 유아임용고시생

시절에 공부했던 내용과 겹쳐서,

큰 노력 없이 무사히 한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휴학 끝에 복학해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느려진 뇌와 빼앗긴 집중력으로 꽤나 고생 중이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점임을 알기에

더 속상했다. 그리고 속상함을 감췄다.


극복하려 노력했다.

집중력을 늘리기 위해 억지로 오래 앉아있기도,

이해될 때까지 책을 여러 번 읽었다.


하지만 그건 극복이 아니라.

이제 앞으로 쭉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였다.


우울증으로 잃은 것 중 하나만 돌려받을 수 있다면

한 줌도 남지 않은 체력보다도

뇌기능을 선택할 것 같다.

당연한 것을 잃었을 때 상실감이 큰 법이니 말이다.




흥미로 시작한 교육대학원은 도전이 되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무사 졸업.

무사 논문 통과.

적어도 내가 수강하는 과목을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공부해 내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교사에서 학습부진아가 된 느낌이란,

막막하지만 달팽이처럼 천천히 해보려고 한다.

다른 달팽이들은 신경 쓰지 말고.

먼저 졸업하는 동기들의 앞날을 응원해 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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