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 새콤 달콤 씁쓸함에 질렸다
지난달에 무리하게 소논문을 쓰고 공부한 탓인지,
아니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제출한 1정 연수
포기각서가 사실은 눈물을 참고 쓴 것이었는지,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이 조금 버거워졌다.
조금. 정말 조금 버거워졌을 뿐이다.
섭식장애 시절처럼 액체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신경안정제 복용 전처럼 아예 못 자는 것도 아닌,
근육이 다 빠져 걷다가도 픽픽 넘어지는 것도 아닌
조금 힘겨워졌을 뿐이다.
그저 요즘은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아 억지로 김밥을 욱여넣고,
잠에 곧잘 들지만 악몽과 식은땀에 젖어 자주 깨고,
잘 걸어 다니지만 운동을 하다가 눈앞이 아득하고,
숨이 막혀 주저앉을 뿐이다.
이제는 안다. 그저 조금 버거워졌을 뿐이지만,
평소 가지 않던 그다지 멀지도 않은 길을 나가
평소에 듣지 못하던 소리들 속에서
내 심심한 하루에는 절대 없는 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신나는 시간이
많이 버거울 것이라는 점.
몸이 조금 버겁다는 건
조금만 무리하면 순식간에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모든 자극을 최소화하라는 지친 몸과 마음의 신호.
요즘은 싱거운 게 좋다.
싱거운 음식은 포만감이 들어도 구역감이 덜하다.
요즘은 꾸벅꾸벅 조는 게 좋다.
어차피 낮잠을 시도해 봤자 실패하고 일어날 거라면
책상에서 찰나의 순간 잠들었다 깨는 게 낫다.
요즘은 공부가 좋다.
나가 논다면 논 시간의 n배 이상 아프게 될 테고
친구를 만나 즐겁게 놀아도 도파민 샘솟는 건 잠시,
금세 지치게 될 테니 차라리 책이랑 노는 게 좋다.
요즘처럼 몸이 조금 버거운 때에는
맵고 달고 새콤하고 쓰고 짠 건 안 먹는 게 낫고
쉬려고 노력해도 잘 쉬어지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어지럽다 싶으면 쓰러지기 전에 빨리 누워야 한다.
그게 설령 아스팔트 길 위라도.
적어놓고 보니 꽤 많이 버거워 보이는 요즘이지만
나름 편안하다.
짜릿하게 행복하지는 않아도 최악은 아닌 상태.
싱겁지만 이게 편안하다.
그냥 심심하게 살고 싶다.
나는 이 정도여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