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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봄 May 04. 2024

싱겁고 편안하게

매콤 새콤 달콤 씁쓸함에 질렸다

지난달에 무리하게 소논문을 쓰고 공부한 탓인지,

아니면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제출한 1정 연수

포기각서가 사실은 눈물을 참고 쓴 것이었는지,

먹고 자고 움직이는 것이 조금 버거워졌다.





조금. 정말 조금 버거워졌을 뿐이다.

섭식장애 시절처럼 액체만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신경안정제 복용 전처럼 아예 못 자는 것도 아닌,

근육이 다 빠져 걷다가도 픽픽 넘어지는 것도 아닌

조금 힘겨워졌을 뿐이다.


그저 요즘은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아 억지로 김밥을 욱여넣고,

잠에 곧잘 들지만 악몽과 식은땀에 젖어 자주 깨고,

잘 걸어 다니지만 운동을 하다가 눈앞이 아득하고,

숨이 막혀 주저앉을 뿐이다.



이제는 안다. 그저 조금 버거워졌을 뿐이지만,

평소 가지 않던 그다지 멀지도 않은 길을 나가

평소에 듣지 못하던 소리들 속에서

내 심심한 하루에는 절대 없는 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 신나는 시간이

많이 버거울 것이라는 점.


몸이 조금 버겁다는 건

조금만 무리하면 순식간에 위험해진다는 뜻이다.

모든 자극을 최소화하라는 지친 몸과 마음의 신호.




요즘은 싱거운 게 좋다.

싱거운 음식은 포만감이 들어도 구역감이 덜하다.


요즘은 꾸벅꾸벅 조는 게 좋다.

어차피 낮잠을 시도해 봤자 실패하고 일어날 거라면

책상에서 찰나의 순간 잠들었다 깨는 게 낫다.


요즘은 공부가 좋다.

나가 논다면 논 시간의 n배 이상 아프게 될 테고

친구를 만나 즐겁게 놀아도 도파민 샘솟는 건 잠시,

금세 지치게 될 테니 차라리 책이랑 노는 게 좋다.



요즘처럼 몸이 조금 버거운 때에는

맵고 달고 새콤하고 쓰고 짠 건 안 먹는 게 낫고

쉬려고 노력해도 잘 쉬어지지 않음을 받아들이고

어지럽다 싶으면 쓰러지기 전에 빨리 누워야 한다.

그게 설령 아스팔트 길 위라도.


적어놓고 보니 꽤 많이 버거워 보이는 요즘이지만

나름 편안하다.


짜릿하게 행복하지는 않아도 최악은 아닌 상태.

싱겁지만 이게 편안하다.

그냥 심심하게 살고 싶다.

나는 이 정도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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