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면 안 된다
교육대학원의 이번 학기 수업은 다 끝났고,
과제와 시험 답안 제출만 하면 종강이다.
이번 주 수요일에 다 써서 제출하고 종강하겠다는
야무진 꿈은 이미 물 건너갔다.
굳이 굳이 핑계를 대자면 시험문제가 충격적으로
어려워서 영 진도가 안 나간달까?
학교에서 열심히 답안을 쥐어짜내다 한계가 왔다.
머리에 전기가 통하는 듯 아프고 구역감이 심했다.
그렇다. 내 몸은 오늘 여기까지인 것이다.
이제는 아파오는 몸 앞에서 순순히 욕심을 내려놓을
줄 안다. 오늘은 꼭 종강하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내일 종강하면 되지 뭐,
5시, 퇴근길 교통혼잡의 전주가 흐르는 시간이었다.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올해 처음 피부로 느껴보는 31도였다.
더위가 아닌 뜨거움에 그나마 남은 혈압을 빼앗겼다.
다행히 버스가 오고 있었다.
‘곧 도착’이라는 빛나는 글자는 내가 타게 될 버스의
혼잡도가 ‘보통’ 임을 알려주었다.
‘보통... 다행이다. 끼어서 가지는 않겠네.’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고, 머릿속에는 귀가해 방의
불을 끄고 누워있을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놓쳤다.
나는 평일 오후 5시의 퇴근 시간 시작 무렵
‘보통’ 버스를 타는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
항상 여유로운 버스를 탈 수는 없으니 때때로
보통의 버스를 타기도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은
평일 퇴근시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버스에 사람이 내 기준으로는 조금 많을지라도
길이 꽉 차고 시끄럽지 않았고, 교통정체도 없었다.
그 보통은 보통의 ‘보통’이 아니었다.
이건 보통 정도로 혼잡하지만 너에겐 아니야.
이 숨은 뜻을 놓친 채,
충분히 지쳤고 혈압은 떨어져 가는 몸을 실었다.
결국 버스에서 공황발작이 터졌다.
당장이라도 차를 멈춰 내리고 싶었지만,
사람들 사이에 갇혔고 몸을 움직일 힘도 없었다.
숨은 점점 조여 오고, 눈앞은 아득하고, 사지에 힘이
풀리는 와중에 어떤 외국인 여성분께서 자리를 내어
주셨다. 이제 앉아있으니 주저앉을 걱정을 덜었다.
말로만 듣고 실제로 본 적은 없는
출퇴근길에 끼어서 쓰러지고 주저앉는다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나였다.
통상적으로 당연한 게 아픈 이에겐 당연하지 않고,
버스 전광판이 알려준 ‘보통’ 표시 역시,
보통 이 정도는 괜찮지만 넌 보통이 아니야.
라는 신호였다.
오늘도 쓰러질 뻔한 위기를 선량한 시민의 도움으로
극복하고 큰 배움 하나를 얻었다.
당분간은, 어쩌면 꽤 오랫동안
여유로운 버스만 타야 할 것 같다.
보통이 무서워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