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대로 되는 게 없어서
어제, 대학원 가을학기 등록기간 마지막 날.
등록금 대신 휴학원서를 제출했다.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수업도, 과제도, 공부도 아닌 바로 상담.
도전하는 것에 겁이 없는 사람인데 상담은 두렵다.
부지런한 베짱이.
나는 마음 편히 쉬기 위해 할 일을 빨리 끝내버린다.
평소 같았다면 등록기간 첫날에 등록을 하고
개강 전 마지막 자유를 즐기겠다며 룰루랄라일 텐데
마음에 바위가 얹힌 것 같았고,
수강신청까지 했지만 등록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부담감의 주인공은 상담실습.
이제 고학차가 되어 졸업을 위한 필수 과목이자,
전문상담교사 1급 자격증 취득에 필수인
상담실습 20시간을 이수해야 하는 학기였다.
요즘 이래 저래 유치원과 휴복직 관련 처리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 지칠 대로 지쳤고,
높은 기온에 돌아다니면 실신 위험이 큰 나는
거의 실내에 갇혀 우울함이 바닥을 파고 내려갔다.
도저히 기후에 적응을 못해서 못살겠다 싶은 정도.
그 좋아하던 발레도 갈 엄두가 안나는 걸 보니
내가 요즘 좀 더 우울하구나 싶었다.
뭐, 우울의 정도야 오락가락하는 게 정상이니까!
처음엔 하루이틀 쉬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발레에 선뜻 발길이 가지 않는 순간들에는 항상
며칠 쉬고 놀고 나면 괜찮아졌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마음에 바위가 얹힌 것 같다는 생각은
마음에 불타고 있는 바위가 하루 종일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더 큰 우울로 번졌다.
아 이번 우울은 꽤 위기구나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뇌로는 굳게 다짐했지만 병은 괜히 병이 아니었다.
약을 뭉텅이씩 먹으면서도 못 자고, 머리는 깨질 듯
하고, 구역감에, 작은 근육 구석구석이 쑤셨다.
1분 1초 숨 쉴 때마다 고통스럽다.
사실 글을 쓰는 지금도 무슨 정신으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글을 쓰는 순간에도 고통은 지속되니,
‘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조언을 받았다
그런데 도저히 어떻게 돌보아야 할지 모르겠다.
쉬어도 매 순간이 고통스럽고 불편하다.
사람을 만나도 순간뿐,
혼자의 시간에 무섭도록 큰 우울이 찾아온다.
책을 펼쳐도 두통이 심하니 집중하지 못하고,
좀 움직이려 나가자니 화장실에 세수하러 가는
시도조차 마치 한라산 등반급이다.
이렇게 힘들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정말 매 순간 고통스러운데 티는 하나도 안 나고
타인은 확인할 수 없으니, 안 그래도 아픈데
미쳐 돌아갈 지경이다. 억울하고 억울해.
이제 꽤나 우울을 잘 데리고 산다고 생각했지만
오만이었다.
결국 등록 마지막 날 휴학원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이 위태로운 마음으로 상담실습을 할 수 없어서다.
내가 상담자인데 상담실 안 갈 수는 없으니.
이번 우울 쓰나미는 정확히 무엇으로 인한 건지,
언제까지 얼마나 일상을 멈추게 할지 모르겠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버텨내야 한다. 평생
우울에 완치는 없다. 혹독한 관리만이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