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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등산기록

관악산 연주대

by 김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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冠岳山

관악산 연주대는 해발 629m에 위치해 있다.


'갓 관'에 '큰산 악'자를 쓴 관악산. 그 꼭대기가 마치 큰 바위기둥을 세워 놓은 모습으로 보여서 ‘갓 모습의 산’이란 뜻의 ‘갓뫼’ 또는 ‘관악’이라고 했다. 세간에는 '악'이 들어간 산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사실 바위 암 巖과 헷갈려 돌산이라 오르기 힘드니 조심하라는 말인 줄 오해했는데 이제 보니 큰 산이라는 뜻이더라. 어쩌면 惡山(악한 산)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관악산은 그 이름처럼 어려운 산은 아니어서 평소에 등산을 즐긴다면 한 시간 정도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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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오르다 보면 관악산의 동물상에 관해 간단한 설명을 해 주는 표지판이 등장한다. 대형 포유류(아마 곰이나 멧돼지 같은 동물들)들은 보이지 않으나 중형과 소형 포유류는 있으리라 짐작(짐작인 것 보니 이들도 거의 없나 봄)되고 족제비와 두더지들은 적은 수나마 확실히 서식한다. 실제로 등산을 하면서 동물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 고양이 두 마리가 광합성을 하고 있긴 했다. 그러니 포유류를 마주친 셈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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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유류보다는 새가 많다고 한다. 관악산은 골이 깊고 숲이 무성하여 많은 새들이 서식하는 장소가 된다. 등산하다 보면 정말로 많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시골집에 내려갔을 때 저녁때 즈음에 울려 퍼지는 비둘기(아마도?)들의 '구구-' 하는 소리처럼 같은 소리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다양한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다양한 새가 서식한다는 말이 더 신빙성있게 들린다.


정상에 앉아 잠깐 글을 썼는데, 쓰는 동안 커다랗고 검은 새들이 많이 날아다녔다. 까마귀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좀 컸는데 이름은 모르겠다. 왜인지 정상에서 보았던 새들은 모두 검은 새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산 정상이 마치 자기네 집 뒷마당 같아 보였다. 비록 한 시간이지만 나는 헉헉대며 그 수많은 계단을 오르며 중력을 거슬러 여기까지 왔는데 저 녀석들은 그냥 밤에 티비를 틀어놓고 뭐 볼 것 없나 둘러보는 식으로 등산을 해대니 약이 조금 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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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새들을 바라보다가 그들이 지나가고 남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자니 뒤에 서울 전경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북쪽을 바라보면 대지를 가로지르는 한강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위아래로 빼곡히 들어선 고층 빌딩들이 보인다. 고작 600m의 산 위에서도 한눈에 담기는 이 작은 공간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 꿰차기 위해 인생을 건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마치 남의 인생처럼 나 자신도 바라볼 수가 있게 된다. 분명 나도 저 아래 어디선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텐데 왠지 지금의 나는 삼라만상을 아울러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단지 지구의 중심에서 아주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 드넓은 세상을 이해하고 있다는 만족스러운 망상이 재생되는 걸 보면 왜 그렇게 사람들이 한강뷰 아파트를 원하는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잠실에 있는 555m의 높이를 자랑하는 초고층 건물인 롯데타워는 서울뿐만 아니라 경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계양산 정상에만 올라도 어렵지 않게 롯데타워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공기 질이 나빠지면서 평균적으로는 점점 덜 보이는 것 같다. 그 덕분에 주변의 아파트들은 실제로 20-30층이 넘는 고층 빌딩들임에도 불구하고 빌라 같은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너도 20층, 나도 20층, 옆집 박씨네도 20층 아파트니 이제 20층은 더 이상 고층이라고 불리지도 않는다. 63빌딩도 처음에는 초고층 빌딩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그냥 옆동네에 있는 조금 높은 건물이 되어버린 것처럼 롯데월드타워도 언젠가는 그 명성을 내려놓게 될까 호기심이 생긴다. 63빌딩이 완공된 1985년부터 2017년 롯데타워에 그 명성을 넘겨주기까지 약 30년이 걸렸다. 또 한 번 30년이 흘러 2050년이 되면 여기저기 500m가 넘는 건물들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20-30층 아파트가 별로 인기 없는 주거시설이 되고 63층이 평균이 되고, 123층(롯데타워)은 그냥 좀 높은 건물이 되는 건 시간 문제처럼 들린다. 뭐 어쩌면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 등의 발달로 더 이상 고층 건물이 효율적이지 않게 되어 오히려 저층 건물의 입지가 올라갈지도 모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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