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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Nov 23. 2020

서울구경

틈틈이


1. 엄마는 주말마다 서울에 간다. 날씨만 나쁘지 않으면 거르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엄마는 지금도 고된 일을 하고 있어서 주말에는 그냥 집에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아마도 엄마의 휴식법이란 그런 것인지 매번 지하철을 타고 그 먼 길을 간다. 남대문시장의 비릿한 갈치조림 골목, 북적이는 신세계 지하 식품관, 요즘은 한산해진 명동거리, 빈대떡 기름이 자글자글 끓는 광장시장... 그런 속에서 활력을 얻는 것 같다. 엄마는 그저 종일 걷다가 50%, 60% 이상의 할인 스티커가 붙은 소소한 것이나 녹두빈대떡, 꼬마김밥 같은 것을 전리품처럼 챙겨 내려와 나에게 나눠준다. 예전에는 나도 자주 따라갔는데, 시장 구경에는 취미가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지하철을 오래 타는 것이 싫고 운전해서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집에 갇히게 되었다. 


2.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가끔 아예 숙소를 잡고 1박 2일로 서울에서 시간을 보낸다. 집으로 돌아가는 노고를 생각하지 않고 온전한 하루를 편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어 좋다. 광화문을 중심으로 서촌이나 종로, 을지로 쪽을 좋아한다. 남편과 가면 죽이 잘 맞는다. 즐겁다. 여기저기서 반주를 즐기며 돌아다닌다. 광장시장 육회 골목에서 육회 한 접시를 시키면 고깃덩이가 넉넉히 들어간 소고기무국을 내어주는데 추운 날에는 육회보다 이게 더 맛있다. 순희네에서 빈대떡 한 접시랑 막걸리를 마시고, 을지로로 넘어가서 호프에 간다. 종로에 살았다면 우리는 매일 저녁 고주망태가 되었을 것이다. 남편에게 은퇴하면 종로에 와서 살자고 했는데, 아마도 집을 구할 수 없을 테니 그것은 힘들 것이다.


3. 종로 쪽에는 확실히 할아버지들이 많다. 신도시에 살다가 오랜만에 넘어가서 보니 확실히 그렇다. 할아버지들은 공원에서 벌어지는 장기판을 중심으로 여기저기 모여있다. 어릴 때는 오락기를, 말년에는 장기판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모인 모습이 서로 닿아있어 소년처럼 느껴졌다. 여러 가지 모양의 모자를 쓴 멋쟁이 할아버지들이 많고, 두루마기를 휘날리는 키가 큰 잘생긴 할아버지도 보았다. 할아버지들은 할아버지들 속에서 마음이 편해보인다. 이들은 아마도 젊은 시절 종로를 누볐을 텐데, 그럼 앞으로 30년, 40년 후에는 강남거리가 할아버지들로 북적일까 생각해본다. 할머니들은 어디 계실까.


4. 서울에서 하는 교육을 들을 기회가 있으면 숙박을 따로 예약하여 집으로 출퇴근하지 않고 서울에서 평일을 보내 보기도 한다. 교육 중 점심시간에는 서울 직장인들을 구경할 수 있다. 저마다의 목에 걸린 출입증을 유심히 살펴보지만 어디 소속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일한다는 것은 분명 멋진 일이지만 일상에 치여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맛집이 많은 것이 가장 부럽다. 그러나 그만큼 사람도 많아서 짧은 점심시간 동안에는 여지없이 길게 줄을 서야 한다. 나는 그건 또 못했을 것 같다. 나는 서울에서의 커피 복지가 좋지 않다고 늘 말하는데, 자리가 없다. 강남에서 교육을 받을 때는 거의 모든 음식점이며 카페가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 회사 주변은 모두 곤히 잠을 자고 있을 시각이다. 나는 바쁘게 한 그릇씩 비우고 자리를 떠나는 직장인들 틈에 끼어서 평소에는 먹지도 않는 아침을 일주일 내내 챙겨 먹어본 적이 있다. 거대한 쳇바퀴 속에서 같이 굴러가는 그 느낌이 좋았다.


또 2단계다. 숙박 대전 쿠폰도 있고 해서 연말에 또 가고 싶었는데 언제 갈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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