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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Jan 05. 2021

코로나와 재택근무와 달라진 일상

 지난 12월 말, 사내에 첫 확진자가 발생했다. 전 직원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연일 내려오는 방역수칙과 엄포와 협박이 섞인 복무지침에 '1호가 될 순 없다'며 몸을 사리고 불안해하던(병마보다도 무서운 징계...) 직원들은 견고하던 빗장이 해제되었음에 한편으로 안도하였다. 소독을 하느라 사무실이 하루 폐쇄되었고, 확진자와 같은 층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모두 2주간의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연말이라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쌓인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옆사람도 자가격리 대상이면 대신 일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신속하게 회사 컴퓨터가 자가격리자들의 집으로 보내졌고, 자가격리자를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집에서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전면 개방되었다. 그동안은 코로나 단계에 따라 3~5개 조로 돌아가면서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보안의 문제, 혹은 이 상황이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로 업무 시스템은 오픈하지 않았다. 사무실 전화만 휴대폰으로 연결시켜 외부 메일을 이용해 급한 일만 처리하는 수준의 재택근무가 연장되어 왔는데,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진정한 의미의 재택근무에 들어간 셈이다.   


코로나 검사

 '면봉 뇌까지 쑤신다'며 친구가 겁을 주었다. 임시 선별검사소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는데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그 찰나의 고통이 너무 공포스러웠다. 앞선 사람들은 예외 없이 눈물을 훔치며 검사소를 떠났다. 나는 공포로 경직된 상태에서 방호복을 입은 선생님 앞에 섰다. 검사용 면봉은 매우 얇고 길었는데 이걸 내 코에 다 넣는 것인가 하고 잠깐 주춤했다. 그러나 눈물이 날 곳을 쑤셔서 눈물이 났을 뿐,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절차는 간단하고 신속했고, 다행히 전면 무료로 바뀐 후라 부담도 없었다. 다음날 오전이 되자 검사 결과가 문자로 왔다.


재택근무

 회사 시스템을 집에서 쓰니 씻고 준비하는 시간과 출퇴근에 소요되는 시간을 2시간 넘게 아끼고도 정상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어 좋다. 8시 30분 정도에 일어나서 커피 한 잔 준비하면서 노트북을 열면 출근 완료다. 하지만 초반에는 일과 생활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 했는데 연말이라 일이 많기도 했고, 나의 노트북이 시스템을 버거워해 버벅거리기도 하고, 무엇보다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종일 시스템을 열어 놓고 밤이고 낮이고 천천히 일을 처리했다. 급한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이 생활에 조금 익숙해진 요즘에는 출근하는 날에 야근을 해서라도 가능한 많은 일을 처리하고, 재택하는 날에는 여유를 가진다. 2020년의 마지막 날에는 zoom으로 부서 전체회의를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했는데 이제는 정말 티핑포인트를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

(의) 회사에 나가는 날이 줄어드니 입을 옷이 부족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간 어제와 다른 옷으로 갈아 입고 출근하기 위해 고민을 하였다면, 지금은 옷장에 있는 옷만으로 그 순환주기를 만들기가 용이하다. 오히려 옷장 속 옷을 입을 날이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홈웨어에는 더욱 눈이 간다. 내놓는 빨랫감도 츄리닝이나 티셔츠, 잠옷, 내복이 대부분이다.


(식) 그래도 11월 중순까지는 외식을 했던 것 같은데 코로나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12월에는 배달앱을 자주 이용했다. 배달음식은 일단 그 맛이 가게에서 먹는 것만 못하고,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음식은 아무리 비싼 음식이라도 그만한 값을 못해 보이는데다 처리해야 할 쓰레기까지 나오니 외식을 하면서도 집안일이 생기는 셈인데 배달비도 추가되니 더 비싸기까지 하다. 원래 잘 시켜먹지 않기도 했고 이제 질릴 대로 질렸고, 시간도 많아졌고 해서 다시 요리에 관심이 갔다. 마켓컬리와 이마트 쓱배송 삼매경으로 식재료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지만, 그래도 사 먹는 것보다는 싸고 만족도가 높다. 그리고 하다하다 버섯을 키워 잡아먹었다.

무럭무럭 버섯 키트

 한편, 카페가 이렇게 소중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음악을 듣고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예쁜 장소에 가는 것이 별 취미 없는 나에게 유일한 힐링이었던 것 같다. 더구나 카페에 갈 수 없으니 누군가를 작정하고 만날 수도, 바람을 쐬러 갈 수도 없다. 아무런 콘텐츠도 없이 밥 먹고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이 내가 가졌던 만남과 나들이의 전부였음을 깨닫는 것이 그리 유쾌하진 않고.


(주)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한 해였다. 한마디로 뽕을 뽑았다. 집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진 요즘을 이전의 작은 집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쉽게 우울해졌을 것이란 걸 너무 잘 알고 있어 '살았다' 싶은 기분마저 든다. 집에서 북 치고 장구치고 어지르고 치우고 가구 배치를 이리저리 바꾸면서 최적의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기타) 넷플릭스, 유튜브 프리미엄, 웨이브.. 이런 것은 이제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 같고. 생산적인 일이라면... 개미 대열에 소액 합류해 20% 이상의 수익을 보았고(그러나 너무 소액이었던 부분..), 미용도구를 사서 남편의 머리카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대가 이렇게 오래 계속될 줄 알았더라면, 흘러간 시간을 조금 더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할 것 같다. 앞으로도 6개월 정도는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고, 그 후의 일상이란 이전의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어떻게 현명하게 이 시간들을 보내고 새로운 일상에 적응해야 할지, 어떻게 잘 살아내야 할지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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