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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감 Jul 22. 2022

그 나무는 어디로 갔을까

판교책방 글쓰기 모임 다섯 번째 날

오늘의 글: <미술하는 마음>

금호동에 재개발 붐이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몇십 년 동안 같은 풍겨인 동네였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오랜만에 금호동 부모님 집에 들렀는데,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는 거예요. 제가 자란 동네의 건물들이 전부 다 밀려 사라져버렸어요. 그 장면이 주는 시각적인 충격이 있었는데 그게 작업의 시작점이 됐어요.

아주 어릴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아파트가 하나 있었다. 지금 수도권을 지배한 대규모 단지의 아파트는 아직 그 지방 소도시에는 개념조차 없던 때였다.

단 하나뿐인 아파트 앞에는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그리고 그 집들이 있는 마을을 통과하면 아파트와 주택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아파트와 주택의 아이들은 한 학교에 다니면서 아무런 감정 싸움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저 같이 집 사이로 난 길을 걸어 학교에 다녔고, 그 길로 집에 돌아갔다. 단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조금 더 걸어가야 했을 뿐이다. 그 주택들보다 아파트가 더 늦게 생긴 것이니, 그 아파트로 이사한 부모들은 좀 더 돈이 많았을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은 아직 그런 것을 몰랐고 부모들도 그걸로 네가 저 주택의 아이들보다 부자고 우월하다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단 하나뿐인 아파트 뒤에는 작은 언덕이 있었다. 언덕 꼭대기는 비어 있었고, 중턱에는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 나무가 무슨 나무였는지는 아무도 몰랐고 동네 아이들 누구도 나무의 이름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다만 그 나무는 봄에 꽃을 피웠다. 나무 주위는 학교와는 또 다른 놀이터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엇이 즐거웠는지, 그 나무 주위에서 그저 우르르 뛰어다니면서 놀았다. 그리고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나무가 피운 꽃을 땄다. 참새들이 벚꽃을 따서 뒷꼭지에서 꿀만 쪽 빨아먹고 꽃을 버리는 것처럼, 아이들도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었다. 나는 그것을 동네 아이들에게 배웠다. 모두 놀고 나면 집으로 돌아간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은 금방 집으로 들어갔고, 주택에 사는 아이들은 아파트 앞마당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돌아갔다.

동네는 바닷가였다. 여름이 되면 꽃은 모두 져서, 일부는 아이들이 꿀을 빨아먹고 일부는 아마 새가 빨아먹어서 모두 져서, 나무는 그저 푸른 잎만 무성하다. 언덕에서는 바다가 보였다. 아이들은 바다로 달려갔다. 2차선 도로를 건너 바다로 달려가, 물 속에서 첨벙첨벙 놀았다. 바닷물에 절여진 아이들은 물이 차갑다고 느껴질 때 집으로 돌아갔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나 주택에 사는 아이들이나 모두 비슷한 거리를 물을 줄줄 흘리면서 걸어갔다.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그 동네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갔다. 서울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였다. 그 곳에는 바다가 없었고, 아이들은 아파트 근처에 있는 나무의 꽃을 따서 꿀을 빨아먹지도 않았다. 깨끗하지 않은 공기에서 큰 나무의 꽃을 따서 입에 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아이들과 주택에 사는 아이들이 가끔 싸웠다.


성인이 되어 그 동네에 다시 돌아갔다. 잠시 여행차 거쳐간 것이었다. 나는 바다에 가느라 가로질러 다녔던 그 2차선 도로를 차를 타고 지나갔다. 도로는 4차선이 되어 있었다. 도로 왼쪽 바다 방향은 숙박업소와 식당, 가게들이 빼곡해서 길에서는 바다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해수욕장이라는 간판과 차 창문을 내릴 때 맡아지는 바다 냄새로 그 곳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로 오른쪽 방향은 이전에 학교와, 작은 집들과, 단 하나 있는 아파트와, 나무가 서 있는 언덕이 있는 곳이었다. 그 아파트는 여전히 그 곳에 있었다. 아파트 뒤 언덕 위에는 또 아파트가 들어섰다. 주택이 있던 곳도 전부 아파트가 들어섰다. 이제 아파트에 둘러싸였을 그 학교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언덕 중턱에 있던 나무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학교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나무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리라는 장담은 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나 역시 엄청나게 달라져서 그 곳에 돌아갔지만. 같이 학교를 다녔고 언덕에서 꽃의 꿀을 빨아먹고 바닷가에 뛰어갔던 친구들도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그 곳에서 그 시절의 흔적을 단 하나, 내가 살던 아파트 하나만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은 어쩐지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그 시절의 흔적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 나무의 모습, 아파트와 학교 사이의 집들, 그 골목길, 언덕에서 보이던 바다, 이런 것들의 흔적은 이제 내 기억 속 아니면 다른 곳에는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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