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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택민 Nov 21. 2024

수능을 치른 첫 제자들에게

첫 고3 담임 및 수능 후기

 올해 고3 담임을 맡으면서 나름대로 세워 본 기준은 한마디로 '규범은 엄격하게 & 학업은 방목'이었다. 제아무리 입시가 중요하다고 해도 공동체 규범을 지도하는 것만은 학업보다 우선한다는 것이 교사로서의 소신이다. 다만 마음 급한 수험생들에게는 이 점이 욕구와 상충할 수밖에 없었으니 종종 마찰도 생겼다. 다시 생각해 보면 아이들에게는 잠깐 공부를 떠나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마음을 이해해 주고 좋게 타일렀으면 더 잘 알아들었을 텐데 성급히 나무랐던 것에 대해서는 아직 미숙함을 느낀다.

 굳이 학업에는 간섭할 것도 없었던 것이 고3 시절 망나니같이 지냈던 나와 비교하면 우리 반 아이들은 알아서들 잘하는 편이었다. 개개인의 학습태도는 편차가 컸지만 대부분 쉴 만큼 쉬면 곧 다시 열심히 공부했으니 괜히 나서서 아이의 리듬을 해칠 이유는 없었다. 단 하루종일 쉬고 있는 아이에게는 한 마디씩 해줬다. 가끔 일사불란하게 모여 점심 자습도 하고 모의고사도 푸는 타 학급을 보면서 너무 손 놓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알아서 잘'이 나름 우리 반의 특색인데 그게 무슨 대수냐.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국 각자가 지는 것이니, 과정도 각자에게 믿고 맡겨두면 된다.(무엇보다 우리 반 청소년들이 원하지 않았다.)

 첫 수능 다음날 죽상을 하고 있는 나를 달래주던 친구들의 위로에 울컥해, 비전홀 화장실에서 질질 울었던 기억이 난다. 적어도 오늘 출석한 아이들 중 그 정도로 표정이 나쁜 아이는 보지 못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을지언정, 그동안의 노력을 통째로 부정당하는 좌절을 맛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보다는 훌륭한 제자들이다. 주변의 기대와 미래의 불확실성을 무겁게 지고 12년을 견뎌온 team 06 모두 대견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때 맞는 노력의 가치를 알고 누구보다 애써온 여러분들이 찬란한 한 때를 마음껏 누리길 기원합니다.



 그럼에도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쳐 속상한 아이들에게.

늪에 빠져있기만 하면 그 사이 찾아오는 또 다른 기회들을 놓치게 됩니다. 우울보다 강한 힘으로 떨쳐 일어나야만 새로 오는 기회를 확실히 낚아챌 수 있는 법. 마지막 순간까지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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