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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킴 Jan 21. 2023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 (上)

12/23, 그라운드시소 성수

캐나다 알버타 주에 있는 밴프로 여행을 다녀와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년설로 덮힌 산과 그로 둘러싸인 꽝꽝 언 호수, 거기에 수차례 내린 눈이 만들어낸 절경. 보급형 DSLR 따위로는 무엇도 담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찍어도 눈에 들어오는 이 경치를 재현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건가? 사진 따위로는 도무지 내가 보고 듣는 것에서 느끼는 감정을 담을 수도, 나중에 다시 봐도 그때의 기분을 되새길 수도 없으니 나의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라 감히 추측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진으로 내가 보고 듣는 이 현실의 한 순간 —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르는 — 을 담아보겠다는 나의 오만과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광각렌즈나 줌렌즈로 찍힌 사진은 눈이 인식하는 세계를 모두 담지 못한다. 그림보다는 피사체의 모습을 '정확히' 담을 수 있지만 동시에 자유로운 표현이 제한되므로, 사진작가의 연출과 보정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감상을 유도한다.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 또한,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을 포착하기 위해 시도한 다양한 연출이 돋보이는 사진전이다.

카르푸셴코의 사진은 아름다운 자연을 담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비단 동식물뿐만 아니라 태초적·근원적인 인상을 주는 모든 것들, 깨끗하고 문명에 물들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본질(nature)과 거기에 어울린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사진전 홍보 포스터 사진에는 향유고래가 대문짝 만하게 나와 있어 흡사 고래와 바다에 대한 사진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고래 옆에서 헤엄치고 있는 카르푸셴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숨은 나탈리 찾기

각설하고, 사진들을 한번 살펴보자.


Ocean Breath

이번 생에 고래를 가까이 하기는 벌써 틀린 모양이다.

나탈리 카르푸셴코의 이름이 박힌 벽을 지나 사진전이 시작되는 곳으로 들어가면, 마치 책의 소제목처럼 Ocean Breath라는 섹션이 등장한다. 요즘 고래를 다루는 작품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은데, 그만큼 고래의 특징으로 제시되는 여러가지 특징들 — 매체에 '다정함'이라는 단어로 통칭되는 — 이 현대 사회에서 추구하는 가치관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물이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한다

Ocean Breath 섹션에서 볼 수 있는 바다 속 사람들의 모습은 주로 나체이고, 고래와 함께 있지 않다면 대개 몸을 웅크리고 있다. 나는 자궁의 양수 속에서 몸을 웅크리는 태아의 모습이 연상됐다. 그래서 물을 근원적이고 순수한 인상으로 사진에 담으려 했던 걸까?

바다에서 태아가 되는 우리

카르푸셴코는 고래를 단독으로 잘 담지 않았다. 그는 사진을, 자연 그 자체를 담으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사진을 통해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겪길 바랐다. 환경에도 관심이 많은 카르푸셴코는 고래를 찍을 때 고래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나체의 사람과 함께 있는 모습을 더 많이 찍음으로써 자연 속의 우리와 공생·공존의 이미지를 담으려고 했던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도나 해러웨이가 참 좋아할 만한 사진전이지 싶다.

헤엄치기

어쨌든, 고래든 그와 함께하는 인간이든, 그 둘을 모두 끌어안고 있는 바다든 참 아름답게도 담겼다.

우주 속의 고래

한참 위로 스크롤을 올리면 몸을 웅크린 사람이 웬 비닐같은 것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말했다시피 환경에도 관심이 많은 카르푸셴코는 플라스틱, 비닐, 심지어는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물속에서 헤엄치는 사람의 모습을 담았다. 이것 또한 의도적으로 폐기물을 활용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고 한다. 늘 폐기물에 대해서는 매체에서도, 여느 작품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데, 카르푸셴코는 비닐로 마치 드레스나 부서지는 파도와 같은 형상을 연출한다. 사진에는 아름답게 담기는데도 불구하고, 그 정체가 폐기물이라는 데서 오는 이질감이 커서 인상이 강렬한 사진들이다. 아무래도 나는 카르푸셴코의 낚싯줄에 제대로 걸려든 물고기인 것 같다.


Angel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인간, 특히 여성들이 피사체로 많이 등장한다. 카르푸셴코가 생각하는 천사는 물에 있는 모양이다. 모든 사진이 다 물속 내지는 물가에서 찍은 사진이니 말이다.

날아오르는 천사

이 사진이 유독 인상깊었는데, 날아오르는 천사를 연출하기 위해 수면에 반사되는 상을 이용했다는 점이 새로웠다. 이 사람은 정말 물을 100% 활용하는구나, 물을 정말 사랑하나보나, 싶고

날아오르자!

생각해보면 물은 부력과 중력이 어느 정도 상쇄된다는 점을 잘 이용한다면 마치 피사체가 비행·공중부양을 하는 것처럼 사진을 연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속에서 비행을 연출할 수 있다니, 카르푸셴코의 '물은 근원이다!'라는 주장에 또 힘이 실리고 있다.


나탈리 카르푸셴코 사진전 (下)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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