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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킴 Nov 03. 2022

11월의 도서: 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  

일상에서 발견한 소설

팔로우하던 SNS 계정에서 김연수 작가의 신간이 출시되었다며 예약판매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게시물을 보았다. 내가 주로 읽는 서적은 철학, 건축학, 자기개발 위주였기 때문에 선물받은 책이 아니면 소설은 읽을 일이 거의 없을 뿐더러 — 따라서 김연수 작가에 대해 들어본 바도 없었다 — SNS 광고로 접하는 소설들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들이 박혀있던 터라 더더욱 구매의사가 없었다. 그러나 홍보를 위해 게시물 작성자가 인용해둔 소설 속 단 몇 문장이 나를 그 자리에서 당장 책을 구매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면 존재를 확장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이겠어?"
"세계를 더 많이 인식하는 것인가요?"
"이질적인 다른 사람의 세계를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거지. 그게 바로 사랑의 정의야."
_김연수,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이토록 평범한 미래』

나는 딱히 '사랑'이라는 단어에 뭐가 있다거나 쉽게 감성에 젖는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 구절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나의 관심사는 오로지 나 자신에 관한 것들이었는데 최근에야 비로소 '타자'로 그 관심이 옮겨갔고, 그러면서 기존에 알던 세계와는 다른 대상들을 본격적으로 인식하면서 생기는 이질감에 압도당하던 차였다. 그 이질감을 관조하며 눈앞에 펼쳐진 또다른 세계를 내면화하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는구나. 이 책이라면 내게 또다른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겠다. 그래서 그 길로 예스24에 주문을 넣었다.

총 여덟 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 모음집이기에 이 포스트만으로 모든 단편을 되짚어볼 수는 없고, 유독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 세 편 정도에 대해 감상을 적어보려고 한다.


새로 난 산책로

「이토록 평범한 미래」

즐겨 찾는 산책 루트 중 서리풀공원~몽마르뜨공원 코스가 있다. 대법원 앞을 지나 서리풀터널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걸어가다보면 어느 새 서초동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꽤 높은 곳까지 다다른다. 보통은 서리풀공원 정상에 도착한 다음, 내리막길을 따라 동광로(도로명)를 가로질러 몽마르뜨공원으로 넘어간다. 몽마르뜨공원에서 서리풀공원으로 넘어가는 길은 흡사 우면산 등산로처럼 조성되어 있어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과한 감이 있다. 그런데 최근에 서리풀공원과 몽마르뜨공원을 연결하는, 동광로를 가로지르는 다리까지 이어지는 산책로가 새로 조성됐다. 새로운 길을 발견하면 낮밤 가리지 않고 무작정 진입하는 위험한 호기심이 또다시 발동해 당시에는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걷고 보자며 신나서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밤이었고 동산에 준하는 곳에 난 산책로 따위가 지도에 표시되어있을 리가 만무했기 때문에 즐거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긴장이 됐다. 그러고 며칠 후, 이번에는 그 산책로를 따라 몽마르뜨공원 쪽에서 출발해 서리풀공원에 도착하도록 경로를 바꾸었는데, 한번 지나온 길을 거슬러 그 출발점으로 가는 동안 기분이 참 묘했다. 뭐랄까, 익숙한 지점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반가움과 안도감이 들었고, 내려올 때에는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커다란 거미줄 같은 것들도 발견했다. 그러다 도달한 산책로의 출발지점은, 모르겠다. 그때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그 감정을 뭐라고 정의해야할지 아직도 그에 대한 적절한 표현을 찾지 못했다. 백 번도 더 갔던 곳이고 이제는 눈 감고도 길을 찾을 수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낯설고 새로웠다. 그러다 문득, 한 번도 그 각도에서, 그러니까 새로 난 산책로 앞에서 서리풀공원 정상을 향하는 방향으로 그곳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낮에 보면 분위기가 또 다르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대해 짧게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 단편에는 '평범함'의 인식 그 이상의 생각이 담겨있다.

… 그럼에도 인간은 지나온 시간에만 의미를 두고 과거에서 현재의 원인을 찾습니다. …
_김연수, 「이토록 평범한 미래」,『이토록 평범한 미래』

어차피 우리가 현재의 현상을 해석할 때 우리의 기억을 바탕으로 원인을 단정짓는다면, 차라리 미래를 기억해버림으로써 우리의 행동을 미래지향적이고 진취적으로, 그럼으로써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는 의미가 아닐까.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기에 긴장했던 처음과 달리 산책로의 끝을 기억하면서 처음으로 되돌아갈 때 반가움과 안도감, 그리고 새로움을 느꼈던 것처럼, 우리가 미래를 기억한다면 지금 이 순간의 기쁨과 고통의 원인을 모두 미래에서 찾을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그렇게 비극으로만 점철되지는 않을 것이다. 왜? 우리가 마음속으로 간직한, 평범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행복하고 멋진 미래가 지금 이 순간의 원인이 될 테니까!



「난주의 바다」

세컨드 윈드
요약: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
제2차 정상상태라고도 한다. 운동 초반에는 호흡곤란, 가슴 통증, 두통 등 고통을 중지하고 싶은 느낌이 드는데 이 시점을 사점死點, dead point이라고 한다. 이 사점이 지나면 고통이 줄어들고 호흡이 순조로우며 운동을 계속할 의욕이 생기는데, 이 상태를 세컨드 윈드라고 한다. 숨막힘이 없어지고, 호흡이 깊어지며, 심장박동수도 안정되고, 부정맥도 없어지게 되어 힘차게 운동할 수 있게 된다. 속도가 빠를수록 일찍 나타난다.
_김연수, 「난주의 바다」,『이토록 평범한 미래』

나는 러닝, 수영, 등산 등 유산소 운동을 매우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400m 언저리인 아파트 단지를 쉬지 않고 계속 달려 13km씩이나 뛴 적이 있을 정도다. 한번 시작하면 높은 강도로 오래 하는 편인데, 정말 '사점'이 어느 순간 찾아온다. 4~5분이면 자유형으로 250m(일반 수영장 5바퀴) 정도를 쉬지 않고 헤엄칠 수 있는데, 그 즈음에 호흡이 어려워지고 마치 곧 익사할 것만 같은 순간이 찾아온다. 꾹 참고 벽을 밀어내며 다음 랩(lap)을 시작하면, 어느 순간 고통이 지나가고 편하게 헤엄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소설이 조금 더 와닿았다. 나는 이런 것들을 경험했음에도 사점만 바라보고 살고 있었구나, 하고.

뭐가 보여? :-)

전에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소중한 사람이 언젠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하다’는 말을 꺼냈던 지인에게, 그때는 잠깐 무너져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어나게 된다는 확신이 있다면야 괜찮지 않겠냐고 대답했었다. 그때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한 건지, 어떻게 그런 여유를 부릴 만큼 안정적인 사람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만 나는 어떤 경우에라도, 순조로이 진행되지 않는 일에 대한 문제든 관계에 대한 고민이든 그 순간에는 그게 전부일지언정 어느 새 현재의 나는 다른 것에 집중하고 있다는, 즉 그 고통의 순간을 지나 계속 나의 인생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을 늘 알고 있다. 그러니까 금방 마주할 사점 이후에 세컨드 윈드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니, 그 세컨드 윈드가 있다는 미래를 기억하고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게 어떨까.

물론 지금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이, 누군가에게는 여유롭고 배부른 소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일어서게 된다는 확신이 불안을 줄이는 데에는 분명히 보탬이 될 것이다. 누군가의 손에 매달려 겨우 일어설지언정, 어쨌든 다시 앞을 바라보는 순간이 온다는 거니까!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

이 단편을 읽으면서 이동진 평론가의 『필름 속을 걷다』 중 「이 차가운 별의 귀퉁이에서―〈티벳에서의 7년〉, 티베트」 편이 계속 떠올랐다. 아주 다른 성격의 글이고 별로 연관성이 있지도 않지만, 객지에서 고생하다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전개가 비슷하다고 느꼈던 모양이다.

무슨 책을 읽을까?

다 끝났다.

이 단편에서 다루는 '다 끝났다'는 말의 의미는 두 가지이다.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낙관주의와 "대지의 모든 것들을 집어삼"키는 종말의 의미. 모래 폭풍이 휩쓸고 간 맑고 개운한 자리에 일억 년이라는 깊은 시간deep time이 묻혀있듯이, 다 끝났다는 말은 무척이나 중의적이다.

주인공인 '그'는 바얀자그에서 다큐를 촬영하며, 죽은 아내가 알려주었던 '다 끝났다'는 뜻의 인도말('캇땀 호 가야')을 계속 떠올리다가 바얀자그를 떠날 날이 가까워지고 나서야 본래의 발음('카타무 호갸')을 기억해낸다. 바얀자그를 떠나는 시점, 먼저 떠난 아내와의 깊은 시간, 어느 순간 모래폭풍처럼 불쑥 떠오른 본래의 발음… 이런 연출들이 한데 어우러져 '다 끝났다'는 말의 두 의미를 강하게 전달해주었다.

<헤어질 결심>을 마지막으로 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이 책을 읽자마자 해준이 떠올랐다. 서래를 쫓아 산에서 또 산으로, 그 산에서 바다로 간 해준을 맞이하는 밀물은 정말이지 그의 모든 것을 집어삼켜버렸다. 밀물이 서래를 집어삼킴으로써 사건은 미결로 끝나게 됐고, 그렇게 서래는 해준의 미결 사건으로 남았다. 동시에 해준의 모든 것들은 서래라는 파도에 휩쓸려 바다 깊이 잠겨버렸다. 물이 세차게 들어오는 해변에 서서 전부를 잃은 듯한 표정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해준의 모습이 이 단편에 포개졌다. 나는 아무래도 <헤어질 결심>에서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모양이다.



소설 모음집이다보니 2014년에 발표된 소설들도 함께 실려있고, 코로나 팬데믹, 세월호 참사 등 당시의 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교보문고 등이 등장하는 공간적 배경의 친숙함 덕분에 글이 어딘가에서 살아숨쉬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유독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많이 실려있는데, 이제 제주도를 가게 된다면 보이는 풍경이 새로운 인상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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