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보다 덕치가 존중받는 상식적인 나라를 추구하자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마치 훌륭한 사회인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렇지만 법을 내세우고 원칙을 말할수록 실상은 포장일 뿐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법의 잣대가 마치 만능의 잣대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법에 대한 과신은 법에 대한 불신을 부른다.
법은 최소한의 상식과 행동의 기준일 뿐이다. 법 위에 양심이 있고 도덕과 윤리가 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은 최소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법적인 증거가 없다거나 비중 있는 전관 변호사를 선임함으로써 법망을 피해 나갈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혼탁한 세상이 맑아지는 일도 아니며 도의적인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역시 아니다.
모든 것을 실정법의 잣대로 만 말한다고 정의롭거나 올바른 사회라고 결코 단언할 수는 없다. 법의 포장 위에 선 강자보다 양심 위에 선 약자가 더 대접받는 사회가 올바른 사회다. 약자의 권리가 강자의 권리보다 존중받는 사회가 건전한 사회다. 그러나 현실은 녹녹지 않다. 때로는 법이 강자를 위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법은 권력자에 따라, 돈의 힘에 따라, 가진 자의 뜻에 따라 자의적으로 행사되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생겨 난지도 꽤 오래되었고 여전히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사법 정의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황에서 법과 원칙을 아무리 내세워 봤자 국민이 듣기에는 공허한 뜬 구름에 불과하다.
정치조차도 법에 의존하는 사회가 과연 옳은 사회인가.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취지를 무시하고 ‘시행령’이란 꼼수로 삼권분립에 흠집을 내는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폭거일 따름이다. 정치권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을 사법적 심판에 맡긴다면 정치는 왜 필요한가.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 옳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거창한 구호를 내세울수록 그 사회는 비정상적이라고 보면 된다. 겉으로는 법과 원칙, 공정과 상식을 외치면서 실상은 불공정과 불의가 만연함을 우리는 보고 있지 않는가. 대통령의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실천에 있음을 자각해야 함은 물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행될 때 비로소 국민의 진정한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법이라 강변하다 보니 국회에는 분야별 전문가는 보이지 않고 오로지 판검사, 변호사 출신들로 가득하다. 따지는 선수들이 많아지자 싸움만 잦아지는 꼴이다.
과거의 과오에만 집착한다면 역사는 발전할 수 없다.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은 없다'란 옛말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없는 죄까지도 만들어 낼 수 있을 만큼 법의 만능시대로 가고 있다. 법은 권력과 금력의 편에 서기 쉽다. 그래서 법으로 포장된 행위는 양의 탈을 쓴 디테일에 강한 악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법치보다 덕치가 더 나은 사회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들은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의 심각한 경제위기에서 돌파구를 찾는 일이어야 하며,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중대한 위기인 불평등, 저출생, 고령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공정과 상식이 최고의 가치임을 내세우며 법을 누구보다 많이 안다는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까지 배출한 나라이지만 엄격하고 형평성 있는 법 적용으로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한 나라가 되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좋은 나라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