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재와 이익준이 만나게 된다면?
글 | 찰리
*본문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요즘 한주의 마무리는 <비밀의 숲2>이다. 앞부분은 전 시즌에 비해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가 싶더니, 감초 역할로 질타와 사랑을 동시에 받던 서동재 검사가 실종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서동재는 전액 장학금을 받고 지방대 법대를 나와 사시를 합격했지만, S대 출신이 장악한 검찰 내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악바리 비리 검사이다. 권력이 있는 곳에서는 입안의 혀처럼 구는 비리 그 자체 서동재는 정의의 편에 서있는 주인공(황시목 검사, 한여진 경감)을 번번이 방해하며 '느그(너희의 방언) 동재'라는 애칭 아닌 애칭을 얻었다.
이번 시즌에서 공개된 회차를 보면, 지치지도 않는지 여전히 출세에 눈이 멀어 있지만 그가 그렇게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는 가슴 짠한 뒷얘기가 드러난다.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인 서 검사는 출세를 위해서라면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선배들을 그런 서 검사를 이용만 하고 '동기'로 생각하진 않는다. 술을 마시고 운전을 대신해달라고 연락하는가 하면, 식사 자리에 불러서는 밥도 먹이지 않고 용건만 듣고 돌려보내는 식이다. 이 인간의 전적을 알면서도 애잔하다. 네티즌들은 우스갯소리로 "우리 동재는 열심히 산 것뿐이에요"라며 '느그' 서 검사를 '우리'로 껴안는다. 검사라는 주류 중의 주류도 그들만의 리그가 따로 있다니 상상도 안되지만, 비주류라는 자격지심과 박탈감은 너무나도 와 닿는다. 서동재가 빌런(Villain, 악당)이 된 계기는 그 자체가 악해서였을까, 다른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까.
이상하게 서동재를 보면 올 초 방영했던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준 교수가 생각난다. 이익준의 인물 설명을 보면 서동재와 정 반대다. 천재 중의 천재, 못하는 것이 없고 놀기도 잘하는데 서울대 의대 수석 입학·수석 졸업생이다. 심지어 따뜻한 마음씨를 가졌고 웃기기까지 하다. 이런 인물도 현실 어딘가에는 있겠지만 설정 과다라는 생각이 지워지진 않는 전형적인 주인공이다. 익준은 누구나 좋아하는 인물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싫어할 이유가 없다. 그는 모든 것을 가졌으니까! 심지어 같이 노는 친구들도 만만찮다. 의대 동기에 대형병원 교수진이며, 그들 또한 정의롭고 유쾌하다.
이 '착한' 드라마는 매력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불편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주요 갈등은 의사 주인공들의 사랑과 우정이다. 이들은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위기를 맞고 성장한다. 의사보다는 환자에 가까운 나로서는 낫지 못할 것 같은 병을 고쳐준 의사 선생님이 덩달아 고마우면서도 묘한 거리감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렵다. 그러나, 병원장을 향한 권력욕보단 허기진 배를 채우는 식욕이 앞서고, 슈바이처를 꿈꾸기보단 내 환자의 안녕만을 챙기기도 버겁다는 5명의 평범한 의사들을 <비밀의 숲> 서동재가 봤으면 "복에 겨운 놈들"이라고 코웃음을 치지 않았을까. 서동재 눈에는 의사 5인방이 빌런일 수도 있다.
왜 나는 빌런(정확하게는 빌런이었던) 서동재에게 더 마음이 갈까. 검사, 의사 모두 나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가 가진 자격지심, 아무리 두들긴다 한들 깨질까 싶은 곳곳의 유리천장이 남일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We all pretend to be the heroes
on the good side
-스텔라 장 'Villain'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