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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와 찰리 Nov 25. 2020

[술로 빚은 인간관계] – 5 와인과 커피

상대방을 진짜 알고 싶다면, 첫인상 깨부수기

글 | 미지


누군가를 만났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첫인상에 금을 내는 것이다. 첫인상은 쓸데없이 강력한 힘을 지녔고, 무엇이든 과장하고 축소하는 건 일도 아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첫인상은 꽤 좋은 편이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서글서글한 눈매가 좋은 첫인상을 만들어내는데 한몫하고 있다. 이미 친해진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에게 내 첫인상을 물어보면 대부분 ‘좋았다’고 말한다. 내 첫인상만 보고 나를 친절하고 다정하고 귀여운(가끔 듣는 말이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성격의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쩌다 한 번씩 ‘맹하다’거나 ‘멍청해 보인다’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나를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내 첫인상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해주었다. 


그동안의 평가를 미루어 보아 내 첫인상으로부터 만들어진 그들의 상상 속 나의 이미지는 이러하다. 태평양 같이 넓은 포용력에, 자신보다는 남을 위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진정한 사랑을 기다리는 외유내강형의 사람. 마치 작은아씨들의 첫째 메그처럼 어른스럽고 착하디 착한 캐릭터랄까. 하지만 모두 잘못짚어도 한참 잘못짚었다. 나는 친절한 메그보다는, 충동적이고 눈치 없는 로리 같은 유형의 사람이니 말이다. (호호)


첫인상에 또 속아버렸다는 생각을 했나?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손쉽게 남을 속일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첫인상 밖에 없을 것이다. 첫인상은 입체적인 것을 납작하게, 빈약한 것을 풍부하게 만든다. 나를 처음 본 사람들처럼 첫인상의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 “너 이런 사람이었어?”다. 나 역시 사람들과 거리를 좁히면 좁힐수록 같은 말을 자주 듣곤 했다. 뭐, 억지로 속인 건 아니니까 사과는 하지 않겠다.


반대로 나 역시 첫인상에 속은 경우가 많다. 학창 시절에 외모만 보고 좋아했던 남학생이 알고 보니 내가 가장 싫어하는 ‘상남자’ 유형의 친구였고, 전 회사에서 나와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아 멀리 했던 상사가 돌이켜보니 은인인 경우가 그랬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보고 덜컥 마음을 정해버린 것일까.  


첫인상의 함정은 사람을 대상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고 들리고 맛볼 수 있는 모든 것에 첫인상은 어김없이 함정을 파 놓고 누군가 걸리길 숨 죽여 기다린다. 


내 경우에는 와인과 커피가 그랬다. 이십 대 초반, 동기들과 함께 간 와인바에서 마셔본 와인은 ‘어른의 맛’이었다. 유기농 포도 주스를 오랫동안 달여 만든 농축액을 보드카에 타 먹는 맛이랄까. 다 마시고 나서 소주보다 도수가 낮다는 걸 알고 속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입에서는 와인의 단내가 계속 남아있었다. 분명 어제 한 잔 밖에 마시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면 나는 와인과 맞지 않은 게 분명하다,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후로 옆에서 누군가 와인을 권해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커피 역시 그랬다. 왜 먹는지 알 수 없는 ‘어른의 맛’이었다. 


그랬던 내가 지금은 코스트코에 가면 가장 먼저 와인 코너를 둘러보고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잔 꼭 커피를 마신다. 첫인상이 진짜 위험한 이유는 나도 모르게 답을 정해버린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외적인 모습, 분위기, 목소리, 말투, 걸음걸이 따위로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추측하고 짧은 순간에 답을 내버린다. 물론 말투나 습관으로 상대방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그 사람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벌써 수십 번씩 머릿속으로 그려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방을 진짜 알고 싶다면 그 생각에 금을 내야 하는 게 먼저다. 색안경을 쓰고 보면 보이는 것도 안 보이게 되니 말이다.   


코스트코 와인 추천, 가성비 좋은 HESS (출처 : 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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