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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Aug 16. 2023

네 꿈은 뭐니?

시골언니 프로젝트(1)

유튜버, 개발자, 의사, 요리사, 경찰, 교사 등등.

"네 꿈은 뭐니?"라고 아이들에게 물으면 흔하게 나오는 대답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은 게 아닌데 하나같이 직업을 말한다. 심지어 왜 그 직업을 갖고 싶냐고 물으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라는 대답이 따라 나오기 일쑤다. '돈 많은 백수'가 꿈이라는 아이도 적지 않다.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현타가 올 때가 있다. 모두가 단거리 달리기 선수가 된 것처럼 똑같이 생긴 트랙을 따라, 결승선만을 좇아 달려 나간다는 생각이 들 때.


물론 누군가에게는 규격화된 그 길을 별다른 장애물 없이 달리는 것이 잘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나는 달리기가 아니라 춤을 추고 싶었다. 운동장 트랙이 아니라 숲 속의 오솔길을, 너른 풀밭을. 때론 걷고 때론 구르기도 하면서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싶었다. 나는 지금 왜 여기에 있는지, 어디로 향해 갈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그럼에도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하루하루 밥벌이에만 치중하던 2022년의 어느 날 발견한 포스터 한 장.


언니 서울 왔다! 시골언니, 서울체크인


본격 아는 시골언니 만들기라니. 이거야말로 내가 찾던 인생의 경로라는 생각에 냉큼 참가 신청을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를 만났다. 길고양이, 이주여성, 청소년과 노인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 박.누.리 편집장.


한 시간 남짓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꾸 눈물이 났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도시의 아스팔트가 아니라 시골의 마을길에 서 있는 이유가.

'서울의 눈으로, 서울의 욕망을, 서울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눈으로, 지역의 욕망을, 지역의 입으로' 전달하고 있는 옥천의 사람들이.


옥뮤다 삼각지대, 옥천hub로만 들어본 옥천. 우리나라 어디쯤에 있는지, 지역의 특산물은 뭔지 아무런 정보도, 아는 지인도 하나 없었지만 짐부터 쌌다. 그리고 만났다. 풀뿌리 지역신문의 성지라는 옥천신문과 평범하지만 묵묵히 이 땅에서 삶을 지어온 사람들을 기록하는 월간 옥이네를.


꿈은 직업이 아닙니다.


옥천신문의 황민호 대표님이 하신 말씀이다. 옳은 말이다. 꿈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다. 무슨 일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하다. 직업이 그저 돈벌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표님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옥천신문과 잡지를 발행하고, 저널리즘 스쿨을 운영하고, 로컬푸드식당 옥이네 밥상을 개업하고, 옥천FM공동체라디오의 전파를 송출하면서 수없이 들은 말이 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을 왜 하지?

그러게 말이다. 누가 보면 대표님이 돈 많은 자선사업가라 오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후원금으로 모자라 개인대출까지 풀로 당겨 인구 3천 명도 되지 않는 청산면에 복합문화공간 '청산별곡'을 지었다. 피시방이며 코인노래방 하나 없는 마을의 아이들이 뛰어놀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해, 폭염에 지친 여름날 길을 가던 어르신이 잠시 더위를 피할 공간을 내어 드리기 위해. 경제 논리로만 보자면 효율이 떨어진다 말할지 모르지만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만들어 내는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옥천은 상상하기 힘들다.


옥천신문의 사소하고 소소한 기사를 읽으며 무력감과 의문도 들었다. 국가에 산적한 커다란 문제도 너무 많은데 지역의 문제까지 누가, 언제 이 많은 걸 해결하나. 발로 뛰며 하나라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기에도 바쁜데 책상 앞에 앉아 자판만 두드린다고 뭐가 달라지나. 지역 미디어의 역할과 저력을 감히 상상조차 못 하는 자의 오만이었다.


'모든 시민은 저널리스트다.' '씨실, 날실처럼 지역에 촘촘한 그물망을 만든다.'
-황민호 옥천신문 대표-


우리 지역은 우리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사소한 민원에 귀 기울이며 연대, 협동, 관계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지역 미디어의 가치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 자신에게 "네 꿈은 뭐니?"라고 묻고 싶다.

옥천에서 옥천신문을 비롯해 유관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50명에 달한다고 한다. 내 꿈은 그곳의 일원이 되어 지역 미디어의 가치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언론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관련된 직업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언젠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역에서 내게 필요로 하는 재능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이제 옥천에 아는 시골언니들이 많이 생겼으니 꿈을 실현하는 날이 조금은 앞당겨지지 않았을까. 작은 희망을 품어보는 열흘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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