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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민 May 24. 2024

농구하다 코뼈 부러진 ssul.

feat. 의사파업

12시 15분. 핸드폰 액정에 2학년 담임선생님의 이름이 뜬다.

"여보세요?"

"선생님! 지금 구기대회 하다가 학생이 다쳤어요. 빨리 체육관으로 와 주세요."


다급한 목소리였지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너무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체육관으로 향했다. 웅성거리는 아이들을 헤집고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똑똑 떨어진 핏방울과 넘어진 아이가 보인다. 다리를 다쳤나 싶어 살펴보려는 찰나, 선생님들이 얘보다도 코뼈가 부러진 아이가 문제란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지난주부터 우리 학교는 구기대회를 열고 있다. 1학년은 피구, 2학년은 농구인데 피구는 사실 크게 다칠 염려는 없는 종목이다. 하지만 농구는 다르다. 손가락이나 발목 염좌는 기본이고, 농구코트에서 넘어지면 마찰력 때문에 화상을 입는 아이들이 매일 몇 명씩 생기곤 한다.


그런데 골절이라니..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코뼈라니ㅠㅠ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아드레날린이 폭발한 아이들. 리바운드를 잡기 위해 여러 명이 동시에 달려들다 키 큰 아이의 광대뼈와 그 밑에 있던 아이의 코가 정통으로 부딪힌 것이다.


화장실에서 피를 닦으며 나오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아 누가 봐도 골절이군.. 당장 병원에 가야겠구나. 광대를 부딪힌 아이도 안와골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직접 응급실로 이송하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보건실로 와 간단한 기록을 남기고, 담임선생님께 연락해서 핸드폰 등 소지품을 챙기고, 교감선생님께 전화해서 상황설명 및 출장 신청을 하고, 행정실에 가서 응급이송비 처리 방법을 묻고, 마지막으로 택시를 불렀다. 이 모든 것을 하는 데에 10분 정도 걸렸을까? 6년 차 교사가 되니 약간 달인이 된 듯하다..


교감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은 병원으로 향하는 내게 정말 고맙다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남기셨다. 고맙긴요. 제가 걱정이 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걸요ㅠㅠ 보호자께서 이송해 달라고 요청하신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려는데 의사파업 때문에 진료 보기가 어렵단다. CT하나 찍기까지 3시간은 족히 걸린다며 은근히 다른 병원으로 가도록 눈치를 준다.


재빨리 상황을 판단하고 광대뼈를 부딪힌 아이에겐 내 신용카드를 건네며 근처에 있는 정형외과를 가도록 했다. 엑스레이를 찍고 전화하라며 핸드폰 번호도 알려줬다. 코뼈 골절된 아이는 접수를 하고 보호자 목걸이를 받아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바이탈은 안정적이었지만 택시 안에서부터 어지러움을 호소하여 자꾸 걱정이 됐다. 응급의학과 교수를 기다리는 사이 코 주위는 부어오르는데 진료를 보기 전이어서인지 얼음팩하나 대어주지 않아 마음이 안 좋았다.


한참을 기다려 마주한 의사는 정말 별로였다. 다친 경위를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을 막고 들은 척도 안 하더니 학생에게도 했던 질문을 하고 또 하고.. 도대체 귀가 있긴 한 거냐! 보호자에게 전화해서는 이 정도 다친 걸로는 여기서 수술할 수 없다는 소리를 하더니, 그럼 그냥 퇴원시켜 달라고 하니까 그건 또 안 된단다.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말투는 또 왜 이렇게 싹수가 없는지 결국 학생이 폭발해서 손목에 있던 환자 팔찌를 찢어버리고 다른 병원에 가고 싶다고 한다.


다친 것도 서러운데 엄마한테 무례하게 구는 의사를 보니 아이가 많이 속상했나 보다. ㅠㅠ 나도 근처에 갈 수 있는 병원이 있을까 싶어 이곳저곳 알아봤는데 당장 갈 수 있는 성형외과가 마땅치 않아 일단 보호자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30분쯤 더 지나 드디어 어머니가 오셨고, 많이 놀라셨을 것 같아 차분히 상황을 설명드리고 우선 응급실에서 CT를 찍어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말씀드렸다. 어머니께서는 아이가 학교에서 크게 다쳐서 속상하셨을 텐데도 함께 부딪힌 다른 아이를 먼저 걱정하시고, 자신이 멀리서 올 때까지 옆에서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별로 한 것도 없고 어쨌든 학교 활동 중 다친 것인데 그런 말씀을 들으니 괜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디 수술까지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드리고 병원을 나섰다.


다시 학교로 돌아가려는데 아.. 나 지금 동전 하나 없구나..? 교통카드 겸 신용카드는 아까 학생에게 주었고.. 학교까지 걸어가야 하는구나^^ 학교 근처에 큰 병원이 있다는 게 다행..인 거겠지? 하하


열심히 걸어 학교에 도착. 땀이 채 식기도 전에 교감선생님께 상황보고를 하고, 보건일지에도 기록을 했다.

CT 판독 결과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육안상으로도 C자로 코가 휘어져 보이긴 했지만 붓기 때문이길, 미세골절이길 바랐는데 제대로 부러지고 말았다고 한다. 수술을 하더라도 부기가 빠지고 2주 정도는 지나야 수술이 가능할 텐데 그때까지 보호대를 착용하고 더운 날씨를 어찌 이길지 나도 걱정이 된다..


따뜻한 봄이 되니 아이들의 활동량이 급격히 늘며 안전사고가 매일 발생하고 있다. 한참 뛰어놀 아이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할 수도 없고. 부디 크게 다치지 않길 바라고 또 바라는 하루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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