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에 갑작스럽게 유학을 마음먹게 된 곳은 일본이었다. 마치 무엇에라도 홀린 냥, 도쿄에 가게 된 나는 '맨 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으로 처음을 시작했다. 주변에는 날 아는 사람도 내가 아는 사람도 있을 리 만무했다. 다 큰 어른이 아이가 된 기분이라 적응하는 데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바라고 바라던 곳에 발을 디뎠다는 성취감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나에겐 관대한 미각(특별한 일이 없으면 뭐든 다 잘 먹는)이 있었기에 짧지 않은 유학기간 동안 접하는 음식으로 힐링했다.
나는 유학시절 남편을 만났다. 일본어도 그 정도면 믿을 만했고 일본 사정에 대하여 잡학다식했던 멋진 오빠였지만, 콩깍지로도 힘들었던 문제가 있었다. 맛있는 일본 음식이라면 그저 '寿司(초밥)'와 'ラーメン(라멘)'이 최고인 사람이었다는 것. 시간이 흐른 뒤 나에게 하는 말에 따르면 내가 좀 더 영양가 좋은 음식을 먹길 바랐다고... 다행히도 지금은 내가 뭘 해 줘도 잘 먹는 남자가 되었다. 이젠 통조림 참치 살코기를 마요네즈 듬뿍 넣어 버무려 만든 ツナマヨ おにぎり(참치마요 삼각김밥)도 불량식품이라며 핀잔주지 않는다.
우리 가족의 식단에는 일본 가정식이 많이 보인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매운 요리를 많이 못 한다는 까닭도 있지만, 나와 남편이 적지 않은 시간을 일본에서 보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이다.
お好み焼き(오꼬노미야끼)는 우리 집에서 잘 나가는 특별 메뉴다. 특별 메뉴치고 정말 자주 해 먹을 정도로 인기가 좋다.
농도를 맞춘 반죽에 양배추를 총총 썰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베이컨에 탱글탱글한 새우살, 기호에 맞춘 적당한 재료들을 듬뿍 넣는다. 거기에 마를 조금 갈아 넣으면 준비 끝. 적당히 달궈진 핫 플레이트에 식용유를 뿌리고 반죽을 올린다. 우리는 오꼬노미야끼의 밑부분이 보기 좋은 갈색이 될 때까지 약불로 놓고 플레이트의 뚜껑을 덮어두고 몇 분을 보낸다. 적당히 좋은 빛깔의 밑부분이 되었겠다 싶으면 휙 뒤집어준다. 그리고 플레이트의 온도를 조금 더 내려두고 아이들을 불러 かつおぶし(가다랑어포)를 쥐어준다.
"엄마 이제 뿌려?"
발을 동동거리며 나의 '얘들아 지금이야.'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다. 하지만 맛있는 타이밍은 마음처럼 빠르지 않다는 거. 플레이트에서 익혀가며 먹을 시간을 계산하고 소스와 마요네즈를 보기 좋게 뿌려내면 아이들은 옆에서 가다랑어포를 탈탈탈 털어낸다. 그리고 그 위에 파래가루도 솔솔. 흘러내린 소스가 보글보글 끓고 냄새에 점점 더 기다리기 힘들어지면 이제 먹을 시간. 엄마와 아빠는 1인 1장, 아이들은 1인 1/2장. 뜨끈한 플레이트 위에서 점점 더 바삭하게 익혀가며 먹으면 순삭이다.
일본에는 일정 시간 동안 특정한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食べ放題(타베호다이)가 있다. 오꼬노미야끼도 그렇게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있는데, 아무리 마음껏 먹어도 네 장 이상은 먹기 힘들지 싶다. 반죽이 익는 데 걸리는 시간 때문에도 그렇지만, 많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아도 두 장만 넘어가면 어느덧 배가 불러오기 때문이다. 맛있는데 배는 부르고 한 장 더 먹으려니 시간이 흐르고.
그렇기에 집에서 느긋하게 부려보는 가족과의 여유가 그리도 행복할 수 없다. 이번 주말엔 또 한 번 오꼬노미야끼를 뒤집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