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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라 Jan 11. 2023

친해질 수 없는 향기

 生姜焼き(쇼가야끼・돼지고기생강구이)

 나름대로 관대한 미각을 가진 나에게 아킬레스건은 특별한 향기를 지닌 식재료다. 예를 들어 요즘 모든 이들에게 핫한 고수라던지, 중화요리에서 고기 냄새를 잡는 팔각과 같은 향신료등이 그것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생강. 난 생강이 진심으로 어렵다. 

 

 나에게 생강이 어려워진 건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녁밥을 맛있게 먹고 있던 난 무심코 김치 속의 무를 집어 입 속에 넣었다. 그런데 그 향이, 모두가 익숙할 그 강력한 향이 훅 들어왔다. 내가 무라고 생각하고 집어먹었던 게 생강채였던 것이다. 무방비 상태로 마주한 생강의 향은 어린 시절 강한 펀치가 되어 날아들었고, 지금도 난 김치를 먹을 때 생강과 무를 헷갈리지 않으려 애쓴다. 


 ‘생강이 향긋하다고? 대체 누가 그런 표현을 하는 거야!’


 나에게 울퉁불퉁한 생강은 생김 그대로 생강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향긋한 향을 가진 너겠지만, 나에겐 그저 표현하기 힘든 냄새를 가진 이상하게 매운 식재료에 지나지 않는다.


 김치 속에 들어있던 생강에 크게 데인 이후, 그는 종종 날 괴롭혔다. 감기에 걸렸다고 할머니가 만들어 준 생강 저민 꿀, 목이 칼칼하면 마시라고 사 주는 생강모과청... 생강은 여기저기에서 날 공격해 왔다. ‘몸에 좋은’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꾸만 나타나는 불청객.




 유학 시절, 잠시 기숙사에 머물렀던 시기가 있다. 일요일을 빼고 아침, 점심, 저녁을 제공해 주는 여학생 전용 기숙사였다. 이곳은 유학생을 위한 시설이 아닌 도쿄의 한 지역에서 학교를 다니는 모든 학생들을 위한 곳이었기에 다양한 식단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식단표는 식당 입구에 붙어있어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아직 일본어 한자에 서툴렀던 초반에는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음식을 마주했던 기억이 난다. 


 그날 나온 메인 반찬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돼지고기 요리였다. 식욕을 돋우는 냄새에 어서 먹고 싶어지는 비주얼. (고기에 굉장히 진심이다.) ‘잘 먹겠습니다.’하는 인사를 마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부드럽고 달콤하고 맛있었다. 그날따라 시장이 반찬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정말 고기를 좋아해서 그런지 밥 한 공기를 ‘뚝딱’해버렸다. 한 가지 부족했던 건, 내가 뭘 먹었는지 모르고 맛있게 먹었다는 것. 이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부끄러움이 많았던 터라 식사를 마치면 방으로 올라가기 바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의 일본 생활이 편안해졌을 무렵, 인연이 되어 가끔 나를 집으로 초대했던 일본인 부부가 생겼다. (지금까지도 쭉 친분을 이어가는 중이다.) 참 살갑게 대해주던 이들 부부를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로 칭했다. 주말이면 따뜻한 밥을 지어놓고 점심부터 저녁까지 이야기하며 나를 챙겨주었는데, 타지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뭐 못 먹는 음식 없어?"


 나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생강이라고. 그랬더니 어머니는 나에게 '生姜焼き(이하 쇼가야끼)가 맛있는데 아쉽네.'라고 말했다. 


 "네? 생강을 구워요? 그게 음식인가요?"

 "아니 아니, 고기구이야. 생강은 향신료처럼 저며서 양념을 하는 거지."


 고기구이라는 말에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서 바로 검색을 했고, 익숙한 고기요리 사진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먹었던 그 반찬. 맛있었는데 뭔지 모르고 맛있게 먹었던 그것. 무슨 원효대사 해골물도 아니고, 이거 참... 그 음식의 양념에 생강이 들어가 있었다니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완벽하게 숨어서 들키지 않았던 그 울퉁불퉁한 녀석이 더 싫어졌다. 바보 같지만.



 

 쇼가야끼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을 알고도, 생강의 작은 조각에서 풍기는 강한 향기 때문에 결코 시도해 볼 생각도 하지 못할 음식이 되어버렸다. 고기를 좋아하는 내가 사양하는 쇼가야끼. 그 맛있어 보이는 비주얼에 빠짐없이 보이는 생강은 나의 천적인 게 분명하다.


 싫어하던 것이 갑자기 좋아지는 때가 있고, 그렇게 좋아하던 것이 갑자기 싫증 나는 순간이 온다. 나와 생강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사진출처 yahoo!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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