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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May 16. 2024

푸들의 산책 수업

봄 안 보여?

 백 점짜리 봄이다. 기다렸던 만큼 찬란하고 예쁘고 따스한 봄날의 연속이었다. 패딩 하네스를 벗고 가벼운 몸으로 산책을 오가며 느꼈다. 역시 동물에게 최고의 옷은 털이라는 것을. 털 사이사이를 헤집는 미풍이 어찌나 반갑고 사랑스럽던지. 그래. 이래서 내가 봄을 기다렸어.

 겨울의 어두운 땅과 봄의 밝은 땅이 부지런히 땅따먹기 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역시 나는 봄을 응원했다. 삭막한 겨울을 뚫고 돋아난 봄은 경이로웠다. 듬성듬성하던 푸른 싹이 온 동네를 덮더니 곳곳에 꽃을 수놓았다. 소복이 쌓인 벚꽃 잎이 발바닥을 간지럽히는 날이면 이게 행복이지 싶다.


 공원 의자 위 언니 무릎에 앉아 사람 구경하기를 즐긴다. 이는 내가 가진 최고의 취미이다. 보드라운 바람을 쐬면서 코를 씰룩씰룩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지나가는 언니, 오빠, 어르신들을 감상한다. 그런데 나보다 훨씬 좋은 눈을 가진 인간들에겐 도통 봄이 보이지 않는 듯하다. 지천에 싱그러운 봄이 널렸는데 나뭇잎 만한 핸드폰 화면만 들여다보는 모습이란. 모두 하나 같이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으로 작은 기기만 응시하는 행태가 유행한 지 오래.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 리드줄이 어디로 향하는지 우리 집 개가 똥을 밟았는지 똥을 싸는지도 모르고 핸드폰 삼매경이다. 언제든지 들을 수 있는 음악소리로 귀를 막고 핸드폰으로 눈을 가리고 길을 걷는 사람들의 동물적인 감각은 놀랍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지도 않고 뚜벅뚜벅 잘도 걷는다.


 모두들 알고 있겠지만 자연의 푸르름은 눈 건강에 좋다. 새소리는 정신 건강에 좋다. 이 두 가지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울한 마음을 이길 수 있다. 정신 건강에 유익한 자연을 느낄 시도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 안타깝다. 난 말이지. 친구들 냄새, 풀 냄새, 땅 냄새를 실컷 맡으며 바람 소리, 새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몰디브에서 멍푸치노를 한 잔 하는 기분이다.

  잘 살고, 잘 노는 부자가 되기란 참으로 쉽다. 나를 둘러싼 자연에 섞여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그럼에도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는지 깨닫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튼튼한 다리, 멀리 볼 수 있는 눈, 소통할 수 있는 귀를 부지런히 쓰고 가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이다.


 오늘 나를 스치는 많은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유의미한 산책을 즐겼으면 한다. 산책은 휴식을 취하거나 건강을 위해서 천천히 걷는 일이라고 한다. 차와 비행기를 타고 멀리 갈 필요 없이 가까운 집 앞 공원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단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즐겨 보자. 파란 하늘을 여행하는 하얀 조각구름, 늘 그냥 지나쳤던 아기자기한 새소리, 온통 초록 옷을 입은 잔디, 머리칼을 어루만지는 선들바람. 오늘 이들 중 하나라도 제대로 느꼈다면 성공한 하루다. 내게는 동네 공원이 최적의 치유의 장소이다. 무료로 누릴 수 있는 일상의 행복을 부유하게 누리고 사는 나와 그대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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