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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Feb 19. 2024

개도 주말을 좋아합니다

평일 싫어 주말 좋아

 가족들이 바삐 지내는 평일은 비호감이다. 개도 주말을 좋아한다. "자두야. 잘 잤어? 우리 오늘 뭐 할까?" 이 말이 들리면 필시 휴무일이거나 주말이다. 언니 오빠가 느긋하게 늦잠을 자는 아침이면 '오늘은 나랑 노는 날이구나.' 하는 생각에 작은 심장이 춤을 춘다. 잠자는 숲 속의 굼벵이들을 깨우는 방법은 이러하다.

 하나. 모닝 혓바닥. 언니의 입안이나 귓속에 혀를 집어넣는다. 로켓 발사처럼 빠른 효과가 있다. 더럽다면 죄송.

 둘. 모닝 점프. 가슴 바로 밑 명치를 정조준하여 세게 밟는다. 힘 조절을 잘하는 게 관건이다. 잘못 밟아 기절하면 아니한 만 못하다.

 셋. 모닝 비명. 달팽이관에 대고 소리를 지른다. 언니는 항상 이어 플러그를 끼고 자기 때문에 가성비가 떨어진다.

 놀라운 건 우리 오빠에게는 세 가지 방법 모두 무효하다는 사실. 오빠는 귀마개를 끼고 자지도 않고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지도 않는데 참 신기하다. 그래도 내겐 민첩한 반응을 보이는 언니가 있으니 괜찮다. 예민한 언니를 집중 공략하면 그만이다. 언니는 나의 아침밥 당번임과 동시에 내 밥이다. 후후.


 가족들이 쉬는 날이면 우린 제법 멀리까지 산책을 간다. 날씨가 좋으면 낯선 동네를 향해 걷고 또 걷는다. 오랜 산책 시엔 언니가 내 특식을 챙긴다. 시원한 멍푸치노나 소고기를 얻어먹을 수도 있기에 기쁨은 배가 된다. 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좋아하지만 개가 모이는 곳은 싫어한다. 이런 나의 성향 때문에 언니 오빠가 진땀을 흘릴 때가 많다. 동족과 친하게 지내기? 목줄 풀린 놈들에게 습격을 당한 후로 도통 마음이 열리지 않는 걸 어찌하랴. 내가 싫어하는 건 아이들과 개, 추위, 뜨거운 아스팔트 등등. 무서워하는 건 가족들 빼고 세상 모든 것. 바람에 뒹구는 비닐봉지만 봐도 도망부터 친다.

 개 피하랴. 차 피하랴. 똥 피하랴. 인간들이 바닥에 뱉은 가래침 피하랴. 나와 산책을 하고 나면 언니는 기진맥진한 상태가 된다. 까다로운 나를 자두 병자라고 부르는 오빠. 썩 듣기 좋은 말은 아니지만 인정한다. 싫어하는 것도 무서워하는 것도 많은 나지만 몇 번을 다시 태어난대도 푸들 자두로 태어나고 싶다.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애견 동반 식당에서 한 끼 식사를 즐기고 애견 카페로 가면 항상 언니 무릎을 베고 낮잠을 잔다. 이토록 단순하고 평화로운 주말 일정을 아주 좋아한다. 개운한 상태로 일어나서 언니를 마주하면 뭐랄까. 언니는 집에서 나올 때와 달리 눈밑이 퀭하고 몹시 피곤해 보인다. 저런. 그러니까 적당히 먹으라고 했잖아.

 사람도 개도 쉬는 날이 있어야 한다. 내 경우 바깥 냄새를 실컷 맡으며 부지런히 걷는 시간을 가지면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가족들 곁에서 나란히 낮잠까지 잘 수 있는 날이면 오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개가 느끼기에도 평일은 길고 주말은 짧다. 아홉 시간 일하는 직장인 가족들. 그들의 출퇴근 시간을 합하면 열한 시간 이상 집에 혼자 남겨지는 셈이다. 워어얼, 화아아, 수우우, 모오옥, 그으음, 퇼! 출근도 지겹겠지만 기다림도 못지않게 지겹다.


 해가 구름 뒤로 떨어지는 주일의 노을 아래에서 가족들이 늘 하는 소리가 있다. 돈 안 벌고 살 수는 없나, 벌써 주말이 다 갔네, 내일 월요일인 게 실화냐 등등. 로또인지 뭔지 그거나 좀 일 등 먹어 보지. 숫자 여섯 개를 못 맞혀서 매주 직장인의 비애니 뭐니 나 참. 그나저나 아직 주일 저녁인데 다들 출근 준비 한답시고 내가 물어다 놓은 장난감을 못 본 척한다. 평일에도 가족들과 붙어 살 방법을 찾고 싶다. 다가 올 토요일을 벌써부터 기다린다. 봄바람, 언니 무릎, 오빠와 드라이브, 여유로운 오후, 멍푸치노 한잔에 완연한 봄기운. 함께 것만으로 완벽한 주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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