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삼
내 몸은 희한한 구석이 많다. 목, 어깨, 허리, 골반, 무릎, 발목, 손목 총 일곱 군데가 상시로 아프다. 섬유근육통인지 뭔지 하는 증후군을 나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채 사는 중이다. 이런 유리 같은 몸뚱이로 일과를 모두 마치고 나면 매일 밤 신체 곳곳이 욱신욱신 신호를 보낸다. '아이고 허리야. 목아. 어깨야.' 아파서 잠 못 드는 밤을 보내며 더 늦기 전에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운동은 생존이야. 살기 위해 운동을 해야 돼.'
헬스, 수영, 필라테스.
세 가지 운동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 중 어떤 운동이 나와 가장 잘 맞을까? 마음 같아선 모두 배워 보고 싶었지만 유독 필라테스가 끌렸다. "필라테스 어때? 추천할만해?" 지인들에게 물으니 모두 입을 맞춘 듯이 비슷한 답을 내놓았다. 유경험자들의 답변은 담백했다. "음. 좋아. 난 추천." 그런데 또 가격은 센터마다 천차만별인지라 필라테스의 벽이 높게만 느껴졌다. 만만찮은 돈을 썼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이 앞섰다.
여기저기 아픈 곳도 많은데 따라갈 수는 있을까.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 과연 며칠이나 다니려나.
일 회 정도만 체험해 보자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뒤지다가 근거리 센터의 중고 이용권을 발견했다. 좋은 기회다 싶어 판매자에게 문의했더니 몇 시간 내로 확답을 달란다. 센터의 분위기를 보고 결정하고자 바로 상담을 예약했다. 동네 운동장을 달리다가 갑자기 필라테스 상담을 받는 나의 추진력 무엇? 한데 중고 이용권을 염두에 뒀더니 괜히 염치없고 상담하는 분의 시간을 빼앗는 것 같았다. 우려와 달리 친한 친구와의 대화처럼 편안하게 상담이 진행 됐고 판매 강요도 없었다. 야무지고 친절한 상담 실장님 덕분에 별안간 "결제할게요."를 외쳐 버렸다. 필라테스 까짓 거 못 먹어도 고!
콩닥거리는 가슴을 안고 서명을 하려는데 상담 실장님이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그런데 기간 내에 횟수를 다 소진할 수 있으시겠어요?"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의지만 앞서서 "해야죠. 뭐. 헤헤." 하고 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음. 처음인데 너무 힘드실 것 같아요. 제가 기간을 좀 늘려 드릴게요."라며 무려 두 달이나 기한을 연장해 주었다. 만일 그녀가 아니었다면 나는 무리하다가 몸을 다쳤거나, 일찍이 필라테스를 포기했을 것이다. 그날 만났던 젊은 상담 실장님은 내가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도운 귀인이었다.
당근마켓의 여성에게 입금 후 양도를 받으려니 별도의 양도비가 또 있었다. 양도비와 이용 기한, 카드 실적을 감안하면 중고 회원권은 사지 않는 편이 나았더랬다. 가엾은 호구 필린이를 구원해 준 이는 전적으로 상담 실장님이었음을 회고하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귀인은 얼마 후 퇴사하셨다.)
드디어 필라테스의 세계에 입문한 나는 생애 첫 개인레슨을 받으며 역대급 망연자실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