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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가 천재라서 웃겨요

제부도 웃길 땐 실컷 웃으세요. 괜찮아요.

by 미세스쏭작가

'제부'. 언니가 여동생의 남편을 부르는 말. 우리나라의 호칭은 어찌나 복잡하고 난해한지. 게다가 제부는 나를 형이라고 부르니 이 모든 게 서로 어색하기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처형. 어서 오세요." 생경한 호칭이 입에 착착 붙기까지 시간깨나 걸렸다. 반려견 '자두'를 '제부야!' 하고 부를 정도로 호칭이 입에 익었을 즈음엔 우린 완전한 가족 공동체가 되어 있었다. 식구들과의 모임이 있는 날 더 이상 내 얼굴에 그림(화장)을 그리지 않게 됐고 팝콘처럼 우수수 튀어나오는 사투리도 비로소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가족들과 함께일 때면 늘 수더분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의 소유자인 제부는 서로가 서로다울 수 있게 만드는 좋은 사람의 근본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반전이 있었으니. 제부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모습의 이면 에는 범접할 수 없는 천재성이 숨겨져 있다. 목표를 수립하고 달성하는 실행력, 타고난 수학 능력 등등.


한 번은 엄마께서 일본 여행을 가셨다가 이상한 스티커를 고액을 지불하고 사 오신 적이 있다. 그것도 매우 여러 장을. 엄마는 사위들과 자식들에게 정체불명의 스티커를 선물로 나눠 주시며 핸드폰에 붙여서 전자파를 차단하라고 권하셨다.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당신을 위한 여행을 즐기시라고 그렇게 말씀드렸는데. 기념품의 가격을 듣자 하니 눈퉁이를 제대로 맞으신 게 분명했다. 코딱지 만한 스티커 때문에 고질라로 변신한 큰딸을 제지하기 위해 엄마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너희들 생각해서 산 거야. 이거 붙이면 전차파가 완벽 차단 된다고 해서."

그때 제부가 "사실 전자파가 완전히 차단되면 핸드폰도 안 터지는 거라서..."라고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소머즈인 나는 그 말을 듣고 박장대소했다. 가끔 우리의 무지는 그의 천재성에 박치기를 하고 큰 웃음의 부메랑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때마다 제부는 안 웃긴 척 연기를 한다.


여동생은 대학생 때 자신의 남자친구였던 제부를 '수학 천재'라고 소개했다. 내로라 한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반 평생을 지내온 제부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사회성까지 좋은 인재 같다. 나라면 펜치로 냅다 끊어 버렸을 자물쇠를 경우의 수를 이용해 푼다던지, 사진을 찍고 봐도 헷갈리는 일렬의 숫자들을 외워서 검색을 하는 걸 보면 '아. 뭔가 달라도 다른 종족이구나.' 싶다.

반면 처형이라는 작자는 안정감이 넘치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대놓고 백치미를 드러낼 때가 많은데. 내가 식사 도중에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베트남 갔을 때 택시 안에서 들었던 노래가 있는데 말이야. 노래 제목이 너무나 알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더라." 그 누구도 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으나 오직 제부만이 어떤 노래냐고 물어 왔다.


"제가 가사를 잘 몰라요...

우아. 쁘띠띠띠 쁘따따."

.

.

.

"그게 노래냐?" 여동생이 조소를 터뜨리며 물었다. 제부는 예상을 깨고 이런 반응을 보였다. "아. 그 노래 뭔지 알 것도 같은데?" 그러자 여동생은 "됐어. 우아. 쁘띠띠디. 이런 노래를 어떻게 찾아."라며 손사래를 쳤다. 약 한 시간가량 핸드폰에서 노래를 검색하던 제부는 몇 차례 "이 노래예요?" 하며 처음 듣는 팝송들을 들려주었다. "아니에요. 제부. 그만 찾으세요. 내가 괜히 이야기를 꺼냈네." 제부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어찌나 미안하던지. 여동생 왈 제부는 뭐 하나 꽂히면 끝을 봐야 한단다. 이런 과정이 제부에게는 일종의 놀이라고 했다.


"처형. 혹시 이건가요?"

♪Ooh I see you see you see you every time♩


세상에! 365일이 넘도록 못 찾은 곡을 단 한 시간 만에 찾아 버린 그의 천재성을 어찌 설명하오리까. 제부가 찾아준 마의 노래는 톤스 앤 아이의 'Dance Monkey'라는 곡이었다. 게다가 "오. 아이 씨 유. 씨 유. 씨 유. 에브리 타임."이라는 그 쉬운 문장을 "쁘띠띠디 쁘따따"로 구사한... 초등학생 시절부터 영어를 의무 교육으로 받아온 나는 대체 뭐 하는 인간인고. 심히 당혹스럽다 이거야. 쉐임 온 미다 이거야.

"제부. 진짜로 찾으실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고맙습니다." 여행의 추억과 함께 굴욕이 서린 곡을 당장에 유료로 결제했다. 앞으로 평생 소장하기 위해서. 가사는 여전히 안 들리지만 말이다.


친정 식구들이 모두 모이면 아홉 명인데 그중 제부가 있단 사실이 언제나 든든하고 따뜻하다. 이질감(?) 넘치는 천재가 내 가족이라서 흥미롭고 재밌기까지 하다. 이따금 조카들이 본인 아빠 자랑을 할 때면 나는 질세라 맞장구를 친다. 다들 집에 자랑하고 싶은 천재 한 명쯤은 있 것이니께. 어깨 뽕 으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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