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여행할 때면 놓치지 않고 들르는 곳이 시장이다. 지역 풍토를 흠뻑 느끼고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면서 다양한 먹거리를 맛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속초, 양양, 강릉 순으로 모든 시장을 구경했는데 어느 한 군데 빠지지 않고 만족스러웠다. 속초와 강릉 시장이야 워낙에 유명하고 관광에 특화된 명소이나 양양 시장 역시 예상외로 규모가 매우 크고 볼거리도 많았다. 모자를 사기 위에 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양양 시장을 발견했는데 “여기에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하고 뿌듯함을 느꼈을 정도였다.
다만 몇몇 시장 상인들이 카드 거래를 거부하여 무더운 날씨 속에서 장을 본 물건을 바리바리 들고 계좌이체를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수고를 덜기 위해 근처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하여 네 식구끼리 돈을 나눠 쥐었다.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사서 다시 모이기로 하고 뿔뿔이 흩어졌는데 의외로 내가 사 온 십원빵이 가장 인기 있었다. 십원빵은 와플 반죽에 크림치즈와 모차렐라 치즈가 섞여 조화로운 단짠단짠의 맛을 내는 디저트였다. 엄마는 "십원빵이 제일 맛있네" 하시며 추가로 두 개를 더 구매해 오셨다.
우리가 시장에서 먹은 짭짤한 음식은 닭강정, 만두, 베이컨말이였고, 달달한 음식은 식혜, 사탕수수 음료, 허니버터 감자빵, 십원빵이었다. 대체로 단맛이 가미돼 있는 간식이 맛있고 먹는 재미도 있었다.
“이건 얼마야?”,“얼마 주고 샀게?” 음식을 먹으면서 가격 알아맞히기를 했는데 조그만 디저트류의 가격을 천오백 원 정도로 예상했던 가족들은 실제 가격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십원빵과 감자빵은 가격이 삼천오백 원으로동일했는데 시장 디저트도 이제는 프랜차이즈 가게와 물가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맛있었던 허니버터 감자빵은 쫀득거리는 찹쌀빵 같은 표피에 으깬 감자가 듬뿍 들어있었다. 버터 풍미가 고소하고 빵 속에 든 달콤한 감자가 제법 포만감을 주었다. 한입 베어 물면 크리미 한 감자 앙금이 이리저리 터져 나오면서 다음 한입을 재촉했다. 동글동글한 모양처럼 맛도 보드라운 감자빵을 먹으면서 맛있다는 말을 연발했다. 역시 갓 나온 빵의 식감과 맛은 감탄 그 자체였다.
네 명이서 각자 만 원짜리 한 장씩을 들고 가게를 다니면서 취향에 맞는 음식을 고르고 함께 나눠 먹는 재미가 꽤 컸다. 여러 음식을 한데 모아 맛보고 평가하니 먹방 유투버가 된 기분이 들었다. 시장에서 음식을 먹고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건 어떤 맛일까?’, ‘맛있나?’ 하는 표정으로 음식과 먹는 이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구경한다. 마트에서 남의 카트를 슬쩍슬쩍 눈여겨보듯이 말이다. 낯선 동네에선 아는 사람도 없겠다 음식 광고라도 하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우걱우걱 맛깔나게 먹었다. 다 먹고 나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산했던 가게마다 줄이 길게 서 있었다. 든든한 배를 두들기며 우린 먹고 또 먹었다.
이틀 연속 바비큐에 자극적인 닭강정을 두 상자나 먹은 탓인지 결국 남편과 나는 앓아누웠다. 아픈 배를 움켜쥐고 인상을 쓰며 겨우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니 겉도 속도 멀쩡해져 있었다. '젊음이 좋구나!' 하는 감탄과 감사가 흘러나왔다.
모든 음식이 맛있고 입맛에 맞았던 건 아니지만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래서 시장엔 꼭 와야 해.”, “이것 좀 먹어봐.”, “어떤 게 제일 맛있어?” 시종 전 먹는 이야기만 했지만 가장 즐거운 건 입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함께 떡을 떼고 즐길 수 있는 가족들이 있어서 가슴속까지 풍족하고 흥겨운 식도락이었다.
<시장 식도락 Tip>
-장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소를 미리 알아보세요. (강릉 시장에는 넓고 쾌적한 고객센터 ‘이음’이라는 장소가 있는데 이를 모르고 북새통을 이루는 시장 길목에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가족 포함...)
-현금: 빠르고 편안하게 계산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주차권: 1만 5천 원 이상을 구매해야 주차권을 주는 시장도 있고, 주차권 자체가 없는 시장도 있습니다. 주차권은 문의하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니 구매 시 기억해 둡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