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덕 쫀득 꿀약과의 마법
자정에 먹은 약과, 정오에 먹은 약과
남편과 저녁 산책을 하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처음 보는 약과 한 봉지를 샀다. "꾸덕 쫀득 요즘 약과. 달콤한 꿀이 들어간 쫀득 꿀약과." 꾸덕, 쫀득, 달콤이라면 절대 못 참지. "내일 아침에 아메리카노 한 잔 내려서 맛나게 먹을 거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새로 나온 약과의 맛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약과 봉투를 만지작 거리는 내게 핀잔을 주는 남편. "먹고 또 후회하지 말고 참았다가 내일 먹어." 밤늦게 군것질을 하고서 가만히 있던 남편에게 왜 나를 말리지 않았냐는 원망의 소리를 몇 번 했었다. 그 후로 한밤 중에 군것질을 할 때마다 아주 정색을 하며 입바른 소리를 꺼내는 남편이었다. "응. 알 았어. 두 개만 먹을게."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남편을 뒤로한 채 붉은 봉투를 뜯고야 말았다. 작은 크기의 약과 여러 개가 윤기 좌르르 한 피부를 드러냈다. 밤 열 두시가 다 된 시각. 약과 한 개가 내 입속으로 들어가자마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봉투에 써진 문구 그대로 꾸덕꾸덕한 식감이 한가득. 쫀득거리는 약과를 한입 베어 물 때마다 꿀 시럽이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하. 이거 뭐야. "여보. 너무 맛있어. 진짜 맛있어. 대박." 나는 손뼉을 치며 짱구의 훌라춤까지 선보였다. 엄격한 표정으로 나를 말리던 남편이 그렇게 맛있냐며 배시시 웃었다. "이런 걸 먹을 수 있는 인생. 바로 이런 게 행복이라고. 다이어트는 안 해도 돼." 이상한 소리가 술술 나올 만큼 맛있는 약과였다. 약과의 마법에 홀린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또 하나의 약과를 깨물었다. 쫀득한 약과가 앞니에 달라붙었다 떨어지면서 입속으로 스르르 꿀을 흘려보냈다. 달달한 향과 식감을 만끽하며 또 감탄. 당장에 아메리카노를 부르는 맛인지라 숙면을 위해 두 개만 먹고 나머지는 냉장 보관을 했다. 이를 닦고 침대에 누워 준문을 외웠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약과를 먹을 수 있어.'
드디어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약과를 꺼냈다. 컵에 얼음을 한가득 넣고 캡슐 아메리카노 한 잔을 뽑았다. 설레는 마음을 가득 담아 약과 개봉박두. 투명한 시럽이 반짝이는 약과를 앙 하고 깨물었다. "악!" 이에 통증이 올 정도로 딱딱해진 약과. 돌덩이처럼 굳은 약과를 겨우 절반으로 나눠 어젯밤의 마법을 기도하듯 와그작와그작. '냉장고에 넣지 말았어야 했나?' 살 때부터 냉장 방식으로 보관돼 있던 간식이었고 단단히 이중으로 싸매서 냉장고에 보관했는데 밤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결투하듯 겨우 약과를 먹었다. 편의점 여러 곳을 수소문하여 딱 한 봉지 남아 있는 약과를 다시 모셔왔다.
이튿날 새로운 마음으로 어렵사리 공수한 약과 봉투를 열었다. 먼저 커피로 입가심을 하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입. 앙~. 엥? 자정의 마법이 풀린 약과는 어떻게 먹어도 짜릿한 첫 만남의 맛을 내지 못했다. 이전에 감탄하며 먹었던 약과 쿠기와 동일한 현상이었다. 본래 알았던 맛에서 조금 벗어난 맛. 손뼉을 치고 오두방정을 떨며 먹을 맛은 아닌 흔한 달콤함. 대량 구매를 알아보고 있던 찰나에 일찌감치 약과 마법이 풀려 다행이었다.
별안간 간식거리에 꽂히면 다급한 마음으로 잔뜩 사재기를 했다가 처치가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살과 싸우며 겨우 다 먹거나 남들에게 나눠주거나 유통기한이 지나버리기도 일쑤였다. 일본 여행에서 먹었던 유명한 간식들 또한 몇 달이 지나도록 수납함에 방치 돼 있다. 당시엔 환장하게 맛있어서 지갑을 다 털어서라도 최대한 많이 사 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입국 후에 먹으니 천상의 맛은 온데간데없고 도통 손이 가지 않는 간식들.
god의 노래 '난 사랑을 몰라'의 가사 한 줄이 생각난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세 번만 먹으면 질리고." 눈이 번쩍 뜨이도록 맛있는 간식을 만나거든 세 번을 먹어본 후에야 여러 개를 살지 말지 결정해야겠다. 평생 이것만 먹어도 좋을 것 같던 소울 푸드도 결국 한때다. 국내외 간식을 불문하고 내 곳간에 쟁여 두는 순간 맛이 변질되는 건 모두 다 나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현상일 터.
약과의 마법이 풀리고 나자 나의 속성이 유심히 보였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첫 만남에 혹할 때가 많은 나.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났어.', '보기 드문 사람이야. 저 사람과 더욱 친해지고 싶어.' 한껏 기대에 부풀어 설레발치다가 몇 번 만나보고 남몰래 실망할 때도 많았다. 첫인상이 유별나게 좋고, 첫 만남에 통하는 게 많은 사람일수록 세 번은 만나보고 관계를 정의해야겠다. 감춰져 있던 모습에 실망하는 것은 물론 타인을 섣불리 평가하는 것 또한 당연한 나의 권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먹는 약과에 춤과 함께 물개박수를 칠 정도로 격렬한 찬사를 보낸 나란 사람. 워워. 앞으론 조금 더 차분해져 볼까. 맛있는 간식을 장바구니에 쟁이기 전에 세 번은 먹어볼 것. 좋은 사람도 안 맞는 사람도 세 번 이상 만나 보고 이미지를 심을 것. 쫀득좌 약과 선생님께서 제법 진득한 가르침을 전수해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