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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뼘 수필 Jul 06. 2024

그 짬뽕 맛있나요?

맛에 담긴 시간의 기억

엄마가 자꾸 짬뽕 이야기를 한다. 

남동생과 가천에 바람 쐬러 갔다가 우연히 먹게 된 어느 중국집 짬뽕이 너무 맛있다는 거다. 

내가 말했다.


"그 집 짬뽕이 특별히 맛있는 게 아니라 엄마가 좋아하는 아들과 같이 간 것 그리고 모르는 곳에서 헤매다 한참 배고플 때 먹은 음식이라 맛있는 거지."

엄마가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맛있다니까."


밀가루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하도 여러 번 말하기에 짬뽕으로 유명한 우리 동네 맛집에 모시고 갔다. 

커다란 그릇에 먹음직스럽게 나온 짬뽕을 먹으면서 엄마는 혀를 찼다.

"뭐 비싸기만 하지, 맛도 없네."

그쯤 되면 나도 부아가 난다. 그래서 한마디 했다.

"그런 말 하면 다시 사드리고 싶겠어?"

엄마도 아차, 싶었던지 입을 다문다.


얼마 전, 붉은 단풍이 뒹구는 길을 따라 붉은 짬뽕 국물을 먹으러 가천으로 갔다. 


스물두 살의 나는 짬뽕을 너무 좋아했다. 

날마다 그 나물이 그 나물인 반찬 앞에서 밥 먹기가 싫을 때 남친이 사주던 뜨끈하고 얼큰한 짬뽕 국물은 가난하고 서럽던, 괜히 심통이 나던 내 속을 뜨뜻하게 데워주었다. 

그때 남친이었던, 지금 남편은 내 짬뽕값을 내느라 보물처럼 아끼던 우표도 팔고, 대학교재도 반 갈라서 자기 아버지한테 두 권 값을 받아내곤 했다. 


지금 나는 짬뽕을 거의 먹지 않는다. 이젠 걸쭉하고 붉은 국물이 싫다. 

남편과 엄마는 짬뽕을 시키고 나는 작은 탕수육을 시켰다. 

조금만 맛없어봐라, 내심 벼르면서. 

엄마와 남편이 짬뽕을 조금씩 덜어줬다. 근데 이럴 수가. 정말 맛있다. 

국물이 시원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서 어딜 다니지 않는다. 미식가는 더욱 아니다. 

그냥 삼시세끼 뭐든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뭘 안 먹는다는 말도 곧잘 한다. 엄마 때문에 가천까지 갔지, 나 먹겠다고 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날 즐거웠다. 내가 몇 번이나 맛있다고 하니까 엄마도 한껏 기분 좋아하셨다. 

갈변한 단풍 낙엽을 밟으니 푹신하고 포근한 소리가 났다. 


"그 짬뽕 맛있나요?"

"네, 맛있어요. 엄마랑 같이 가서 그런가 봐요."

이렇게 말하니 누가 보면 효녀인 줄 알겠다. 

아직도 엄마한테 맨날 불퉁거리는데. 낼부터 엄마한테 잘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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