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김장생신인문학상 수상작
“같이 산에 다녀요.”
퇴직했으니 운동 삼아 다니자는 아내 말을 그는 한마디로 잘랐다.
“동네 여자들하고 다닌다며, 하던 대로 해.”
아내가 죽고 난 뒤, 그는 동네 산을 미친 듯이 오르내렸다. 짐승처럼 산을 뛰면서 아내의 냄새를 찾아 벌름거렸다. 아내의 흔적을 뒤졌다. 그런 몇 달이 지나자 끓어오르는 염증이 무릎관절을 비틀어놨다.
담배는, 그랬다. 평상에 앉아 우두커니 장독간을 보고 있었다. 아내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장독대 위에서 햇살이 부스스 먼지를 일으키던 볕 좋은 날이었다. 인공눈물을 넣다가 장독 사이에 끼어있는 구겨진 담뱃갑과 라이터를 봤다. 장독간 옆에서 담배를 피운 적도, 그런 걸 아무 데나 방치한 적도 없어서 그는 아들을 불러 뭐라고 했다.
“너도 담배 피우냐? 피웠으면 치워야지.”
아들이 주저하면서 대답했다.
“엄마가.”
“뭐라고? 니 엄마가 담배를? 언제부터? 왜, 대체 왜?”
“엄마는 술도 못 먹잖아요.”
그것도 몰랐냐는 듯, 아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봤다. 쌀쌀하고 뻣뻣한 얼굴이었다. 담배를 묻는데 술로 대답하는 아들을 선뜻 이해하기 어려웠다.
“할머니 때문에요.”
뜨악한 얼굴로 쳐다보는 그에게 아들이 마지못해 내뱉고는 쌩하니 들어가 버렸다. 제 어미한테는 살갑게 말도 잘하더니, 그러다 그는 가슴이 쩍 갈라졌다.
허리뼈가 부러져 몸져누운 어머니 간병은 아내 몫이었다. 인문고 교감으로 승진하면서 수험생들을 핑계 삼아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는 제 손으로 어머니 기저귀 한 번 갈아드리지 않았던 날들에 무심했다. 치매까지 온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입원시켰을 때, 그는 아내에게 섭섭한 마음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자고, 큰아들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러다가 엄마까지 쓰러지겠다는 아들의 말을 모른 척 듣고만 있던 아내가 더 미웠다. 시어머니 수발에 정성을 다하던 아내에게 얼마나 고마워했는가 말이다. 그리고 자신은 아내의 노고를 고스란히 알아주는 자상한 남편이란 게 자못 기꺼웠다. 바람을 피웠나, 가장 노릇을 못 했나, 폭력을 행사했나. 평생 학교와 집만 오간 참으로 성실한 남편 아니던가.
술도 먹지 못하니까. 아내는 어머니 똥 기저귀를 갈고 나면 장독대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구린내 나는 한숨을 그렇게 뱉어냈던 것일까. 생전 뾰족한 가시 하나 내밀지 않던 아내는 제 몸으로 장을 담그며 그렇게 담배를 피웠을까? 그는 두 번 다시 입에 담배를 물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우리 어릴 때 범어동 살았던 거 맞지요?”
하루는 큰아들이 전화로 그렇게 물었다.
“그랬지, 그건 왜?”
“엄마가 며칠 전부터 아버지를 찾으러 다닌다고 이 사람을 불러냈거든요. 아버진 집에 계시는데 자꾸 낯선 데를 데려가서 남의 집을 기웃거리니까 이 사람이 좀 놀란 것 같아요. 근데 들어보니까 어릴 때 우리가 살던 데 같아서요.”
그렇지 않아도 아내가 이상한 의심을 해서 숨이 막히던 참이었다.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와 만나고 왔는지를 시시콜콜 캐물었고 핸드폰까지 뒤졌다. 아내는 불퉁거리고 헛소리도 했다. 치매일까, 우울증일까, 두려웠다. 병원에 가보자고 할 때마다 왜 환자 취급하냐고 앵돌아져 우는 통에 달래느라 또 애를 먹었다. 무슨 마음으로 옛집을 찾아다녔는지 묻지 않았다. 들어줄 일이 꿈만 같았다. 언제나 자기 뜻만 받아 주던 아내가 무슨 말을 뱉을지 부담됐다.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아내의 어깃장을 참지 못하고 화를 냈다. 아내를 모른 체 해버렸다.
어지럼증을 호소하며 정신을 놓은 아내가 응급실로 실려 가고 사흘 만에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뜬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아내의 몸에서 온기가, 살과 피가, 커다란 세상이 빠져나갔다. 그때 그는 아내의 늘어진 허벅지에서 숱한 바늘 자국들을 봤다. 지병인 당뇨를 끌어안고 혼자 허벅지에 인슐린 주사를 놓았던 아내. 그녀의 허벅지를 열고 주사 한번 놔준 적 없던 남편을, 평생 성실해서 죄 없다고 생각했던 한 사내를, 늙수그레한 그는 처연하게 굽어보고 있었다.
중이가 옥상 가림막 아래서, 남자애와 수다를 떠느라 정신없다. 남자애가 뭐라고 할 때마다 몸을 흔들며 웃었다. 저것들은 덥지도 않나. 그는 찔레의 사료를 주지 못한 며칠 동안 안달이 났다. 그렇게 따끔한 말을 듣고도 또 갖다주면 중이의 엄마는 정말 그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갈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주고 싶었다. 주고 싶어 속에서 불이 났다. 아들과 중이가 없을 때면 찔레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 찔레는 그의 말을 물끄러미 경청했다. 그런 찔레를 위해 무엇도 하지 말라는 건 죽으라는 얘기다.
먹을 것만 준다고 잘 키우는 건가? 저렇게 햇살 아래 방치하면서. 찔레에 등한한 앞집 사람들이 정말 싫다. 큼, 들리라고 헛기침을 했다. 차 소리, 매미 소리, 옥상으로 올라가는 소란에 그의 소리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는 찔레를 노려봤다. 제발 나 좀 봐. 바보처럼 던져주는 과자나 받아먹지 말고. 눈알이 빠지라고 눈을 부릅떴다. 남자애가 던진 과자부스러기에 넋 나갔던 찔레가 거짓말처럼 그를 쳐다봤다. 그가 찔레에게 말했다. 짖어. 짖으라고, 인마. 찔레가 발작적으로 짖어대기 시작했다.
“시끄럽다.”
그들은 찔레를 쥐어박으며 가림막 지지대에 목줄을 묶더니 옥상을 내려갔다. 그리고 대문 앞에서 다시 수다를 시작했다.
“야, 야들아.”
그가 애타게 불렀지만 안 들리는지,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둘은 소란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며 골목을 걸어갔다. 이내 뜨거운 길이 제 치마폭에 아이들을 감추었다. 찔레를 잊은 걸까. 대문도 잠그지 않고 나가선 한참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달궈진 난간을 붙들고 찔레를 불렀다. 더위 먹은 찔레는 움직이지 않았다. 쳐다도 안 봤다. 혀를 빼물고 헉헉거렸다. 지지대에 묶어놓지 않았으면 그늘을 찾아갔을까. 초가을이어도 한낮의 햇발은 찔레의 등을 화살처럼 찔러대고 있다.
괜히 짖으라고 했나? 후회는 중이에 대한 적의로 바뀌었다. 어릴 때부터 저를 키우다시피 한 찔레를 내팽개치고 놀러나 가고.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래도 그건 나중 일이다. 지금은 찔레를 살리는 일이 더 급하다.
그는 무거운 다리를 끌고 집을 나왔다. 중이의 집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는 아내에게 찔레를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새집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야지. 찔레와 산책도 하리라. 녀석이 갑자기 달리면 숨이 컥 막히도록 같이 뛰어야지. 푸르게 내달릴 것이다. 그는 쑤셔대는 무릎을 두드리며 혼자 웃었다.
얼른 갈게.
두 번 다시, 찔레를 모른 척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곧바로 옥상 층계를 내디뎠다. 찔레는 그를 보자 뜨거운 바닥에 배를 비비면서 끙끙 앓는 소릴 냈다. 사료통에는 파리 한 마리가 눌어붙어 있고 물그릇도 바짝 말라붙었다. 옥상 텃밭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 위로 매운 햇살이 번쩍거렸다. 그는 부글부글 염증이 끓어오르는 무릎을 꿇고 찔레에게 손을 내밀었다. 찔레가 그의 손을 핥았다. 더위에 눅진하게 녹은 찔레의 혓바닥이 까슬했다. 아무도 없는데 그는 찔레에게 속삭였다.
“내가 풀어줄게. 여기 있다가는 너 죽어. 나랑 같이 가자.”
찔레가 순한 두 발을 그의 손에 얹으며 애교를 부렸다. 찔레 향기가 오련하게 그의 가슴으로 스몄다. 그는 찔레의 목줄을 풀었다. 그 순간, 낮은 자세로 손을 핥던 찔레가 그의 손목을 물어뜯고 동시에 무릎을 찍어 내렸다. 갑작스러운 힘에 그는 풀썩 주저앉았다. 그의 손에서 벗어 난 찔레가 옥상을 내달았다. 바지직, 깊고 날카로운 통증이 무릎에서 허벅지로, 등줄기로 전해질 때, 그는 보았다. 햇살이 번쩍거리는 하늘로 자유로운 독수리처럼 힘차게 솟구치는 찔레를. 너무나 눈이 부셔 그는 통증도 잊은 채 탄식처럼 내뱉었다.
“찔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