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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돌며

소소한, 따뜻한

by 한 뼘 수필


와우! 집 근처에 공원이 있다는 걸,


그렇게나 원했던 흙길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좋던지.

작은 워킹 파크다.


말 그대로 맨발 걷기 길을 조성해 놓은 곳이다.



논두렁 밭두렁으로 가던 산책길 코스가 공원으로 바뀌었다.

원으로 이어진 길을 한 바퀴 돌면 850보 정도 된다.

보통 8~10바퀴 정도 돌았다.


요즘은 맨발로 걷기 때문에 조금 천천히 걸었더니 천보 정도 된다.

맨발로 걸을 때는 7바퀴를 돈다.

나의 걷기 정보를 누구도 묻지 않았는데 왜 이리 상세하게 주절대는지.ㅎㅎ




작은 공원이라 길의 폭이 넓지 않다.

어른 서너 명이 나란히 걸으면 길이 답답해져 버린다.



오늘도 여인네 네 명이 길을 차지하고 나란히 걷고 있다.

그건 그런대로 괜찮다.

내가 그들 뒤를 다소곳이 따르거나

잠깐만요, 그러면서 재바르게 추월하면 되니까.



그런데 같은 방향이 아니라 길을 막으면서 마주 올 때는 조금 성질이 난다.

아, 어쩌란 말이냐.



사진: 이영환 작가


서울 사는 아들네 갔다가 가까이 있는 석촌호수에 간 적이 있다.

석촌호수는 겁나 아름답고 길 또한 넓었다.


사람들은 거의 입구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물론 처음부터 그걸 간파할 만큼 나는 섬세하지 못하다.

아무 생각 없이 왼쪽 방향으로 걸었다.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가기 싫다는 무의식의 발로였을지도.



(이쯤에서 꼭 등장하는 남편)

아니나 다를까 뭐라고 했다.




"딴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걸어가는데."

"왜? 공원 도는 방향이 정해졌어? 남들 한다고 따라 해야 해?"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잖아."


그때는 남 먼저 생각하는 남편이, 융통성 없는 남편이 답답했다.

"난 창의적 인간이라 남 따라 하기 싫어."



그때 나를 창의적이라 말했던 시건방을 반성한다.

요즘 나는 남이야 아랑곳없이 나란히, 나란히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그 창의적인 여인네들이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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