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작별한 지 겨우 두 달. 하지만 아홉의 꼬마에게 평생을 앓을 꿈을 꾸게 만든 완벽한 하루는 2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비좁은 상영관에 빼곡히 들어찬 관객들, ‘버건디’보다는 ‘팥죽색’이 더 어울리는 바닥과 좌석, 그리고 엄마가 현장에서 어렵사리 구매한 A열 티켓. 지금보다도 스크린이 훨씬 가까웠던 탓에 엄마와 아들 둘은 2시간 동안 화면을 품에 안고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제목은 <말아톤>, 어린 내 눈에 담아내기에 화면은 너무나 컸지만 11년 평생 처음 느끼는 황홀함을 느꼈다. 그리고 확신했다. 앞으로 꽤 오랫동안 영화 주위를 맴돌게 될 거라고. CGV 수원에서의 초봄이었다.
그로부터 또 10여 년 뒤, 대학 논술 전형에 응시하러 집을 나섰다. 가족이 알기론 그랬다. 최소 등급을 맞추지 못해 시험을 본다 한들 가망이 없었으니. 정리해고 후 공원을 전전하는 창작물 속 회사원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 아지트로 향했다. 평일 낮의 극장엔 나뿐이었다. 그날은 칠흑 같은 우주를 떠다녔다. 울적한 날에 어울리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주에서 외톨이가 된 것보단 내 상황이 낫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끝없는 우주가 이불처럼 포근했다. 포근해서 울었다. 4DX로 본 <그래비티>는 처음으로 혼자 본 영화였다.
CGV 북수원에서 일했던 아르바이트생이 알 정도로, CGV 수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은 작년 말부터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평생을 당연히 오갔던 영화관이었기에 그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도 시간을 내어 극장을 찾았던 5월 4일 전까지는. 미안하다는 말에 참 인색한 것은 참 변함이 없다. ‘그렇게 돼서 유감이다’ 한 마디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여기는 닫으니 다른 지점 이용해 달라’는 문구에 질색하며 마지막으로 극장을 돌았다. 보지도 않을 영화를 발권까지 하며 상영관에도 발자국을 남겼다. 내가 숱하게 변해도 그 자리 그대로 있던 극장이 닫는다니 속상하고 분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당연히 곁에 있던 것들은 대개 기척 없이 떠나려 하더라.
익숙한 그 맛에도 낭만 있는가? 그럴 수 있다. 영화 좀 봤다고 자평하는 내가 <어바웃타임>을 인생영화로 뽑을 때 머쓱해하는 것처럼, CGV 수원에서 나를 찾았다고 하기엔 조금 쑥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다만 처음 그 안에 속했던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영화 주변을 맴돌게 되리라는 것을 CGV수원이 정말 없어진 이제야 조금 알게 됐다. 그곳이, 그리고 그곳에 있던 내가 벌써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