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거지 같은 놈들아, 영화 좀 보자”했지 <저수지의 개들>, 1996
벌써 한 달이 더 된 일이다. 수원에 시네마테크가 있다는 사실과, 그곳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을 모아 상영하는 기획전이 열린다는 내용을 우연히 접했다. 무료 상영전이더라도 서울에 있는 시네마테크에 다녀오려면 한세월이었기에 아주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미 다 봤던 작품들이었지만 공간만 괜찮다면 자주 방문할 생각으로 <저수지의 개들>을 포함한 세 편을 관람하기로 신청해 두었다.
수원에 있다는 것만 알았지 막상 찾아가려니 생각보다 멀었다. 시네마테크는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를 가야 하는 수원의 반대편에 있었다. 무엇보다 내려서 아파트 단지를 끼고 꽤 걸어 들어가야만 했다. 열심히 걸어 도착했지만 상영 공간을 찾는 것은 더 어려웠다. 도서관과 문화센터, 게다가 실내 수영장까지 딸린 복잡한 공간에서 한참을 헤매다가 제일 오래돼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갔다. 헤맨 것 치고는 일찍 도착해 한숨 돌리고 간단한 확인 절차를 마친 뒤 상영관으로 들어섰다. 처음 눈에 띄었던 것은 나무 바닥, 살살 걸어도 소리가 크게 나는 소재였다. 보아하니 애초에 극장으로 설계된 곳은 아니었고, 강연장과 같은 용도로 사용이 되는 공간으로 보였다.
크지 않은 상영관 한가운데에 혼자 앉아 스크린에 영사된 프로그램 홍보 이미지를 찍으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렸다. 하나둘 들어서는 사람들의 복장이 가벼웠다. 주변에 사는 사람으로 보였고, 집 근처에 이런 공간이 있다니 부럽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평균 연령대가 꽤 높아 보였다. 내 또래는 한두 명, 나머지는 부모님 뻘이나 그보다 많아 보이는 관객이 들어섰다. ‘귀 자르고 그럴 텐데 괜찮으실까’ 하는데 상영관이 어두워졌다.
대형 극장 체인을 비롯해 작은 극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에티켓 영상이 재생됐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 영상이 꽤 공들인 것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의 장면을 짜깁기해 ‘촬영 금지’, ‘앞 좌석 발로 차기 금지’, ‘조용한 발걸음’ 등에 관한 내용이 재치 있게 안내되었다. 저런 걸 영상으로 만들어서 보여줘야만 조심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영화가 시작됐다. <저수지의 개들>을 봤다면 알 수 있겠지만 초반 몇 분은 말 그대로 의미 없는 대화들로 채워져 있다. 곧 한탕하러 나갈 것만 같은 사람들이 식당에 앉아 생각나는 대로 떠드는 그런 장면이다. 그때 맨 뒷자리에서 쩝쩝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를 먹는 소리가 아닌, 식사 후에 미처 삼키지 못한 것들을 골라내는 그 듣기 싫은 소리가 반복되었다. 극장에 자주 가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꽤나 아찔한 순간이다. 여느 극장에 앉았을 때 누군가 지속해서 거슬리는 소리를 내거나 일행과 큰 소리로 대화한다면 굉장한 불안감을 느끼곤 하잖는가. 가장 듣기 싫은 소리는 그 어떤 굉음이나 욕지거리가 아니다. 크기를 떠나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런 소리가 제일 무서울 때가 많다. 어차피 실행에 옮기지도 못할 시정 요구나 암살 방법을 떠올리고 있는 와중에 옆에 앉은 다른 관객은 하품을 한다. 혼자만 들리는 그런 하품이 아니고, 말 그대로 ‘하암’하는, 그런 진짜 하품. 짜증이 밀려오고 여기까지 찾아온 노력마저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지연 입장은 조심성 없는 발걸음과 함께 줄기차게 이루어졌다. 결국 참다못했는지 뒷자리에 있던 관객이 쩝쩝 관객에게 가서 무어라고 조곤조곤 말하더니 자리를 떴다. 귀 자르는 장면에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몇 명을 뒤로하고 영화는 끝을 향해갔다.
상영관에 남은 건 세 명, 참담한 심정으로 크레딧이 다 올라가길 기다렸다. 크레딧마저 다 올라가니 DVD의 메뉴 선택 화면이 보였다. 그냥 기다렸다가 메뉴가 나오기 전에 끝내면 안 됐을까? 잘못됐다는 건 아닌데, 왜 창피해진 건지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 그래도 상영전이랍시고 기획된 프로그램인데 맘에 들지 않아서 요즘 말로 ‘억까’를 하는 건지, 아무튼 처음부터 끝까지 아쉽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자막의 맞춤법이며 해석도 온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는데 무슨 정발 DVD가 이 지경인지, 한숨을 쉬며 상영관을 나섰다.
수원미디어센터에서는 영화제를 비롯한 영화 관련 사업을 지속해서 기획하고 운영해 왔다. 수원 시민들을 대상으로 영상 촬영과 제작 강좌를 제공하기도 하고, 관객 프로그래머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였다. 수원시네마테크는 그 일환으로 조성된 공간이었다. 내가 어떤 사업 담당자도 아니고 그 속사정을 잘 알 수는 없지만, 아주 불쾌한 경험이었다. 분명 공들여 운영하는 사업일 것이며 수원에 시네마테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조용하게 좋은 영화 한 편 즐기고 가고 싶다고 소망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공간? 에티켓 영상까지 공들여 만들어 보여줌에도 그에 부응하지 못하는 관객의 수준? 모르지, 목소리 내서 전해도 알아야 할 사람들은 계속 모를 것이고, 그들 중 일부는 스스로를 씨네필이라 자평할 것이다. 입장료로 천 원이라도 받았다면 몇 명이나 왔을까 하는 냉소적인 생각과 함께 나머지 관람 예약을 모두 취소했다.
이후 진행된 상영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불거졌는지, 더 좋은 공간으로 이전할 예정이라는 문제를 받았다. 그들의 노력과 추진력에 박수를 보내면서 한 번은 가볼 수도 있지만 글쎄, 문화시민 호소인들이 변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수원시네마테크는, 또 몇몇 극장들은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