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는 여전히 핏자국이 선명하다. 꼬박 일주일이 되었지만 그 사이 내렸던 이슬비는 그 자국을 지워내지 못했다. 피가 바닥에 쏟아지는 순간, 그곳엔 나와 4층 아주머니뿐이었다.
공동현관 앞에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얼른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관자놀이에서는 피가 흘렀다. 고모뻘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이웃임을 확신했다. 누워 계신 아주머니 옆에 쪼그려 앉아 ‘괜찮으시냐’, ‘일어설 수 있으시냐’ 계속해서 여쭙자 이내 의식을 차리셨다. 마지막 계단에서 미끄러지신 것 같다며 통증을 호소했다. 무얼 하러 계단을 내려오셨는지, 왜 옛날식 유선 전화기를 상자에 담아 들고 외출을 하신 건지 좀처럼 기억을 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 손을 잡아 아주머니를 일으켰고, 휘청하시던 아주머니는 마스크를 벗고 입 속에 있던 피를 뱉어냈다.
병원에 가시더라도 진정할 시간과 보호자가 필요했다. 집의 호수조차 기억을 못 하시다가 습관적으로 외고 계셨던 우편함의 위치를 가리켰고, 아주머니를 부축하여 4층까지 계단을 올랐다. 힘들어하면서도 반복해 말씀하셨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외손주가 떠오른다고. 4층에 다다르고 집에 들어가시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1층 우리집도 지나서 중앙현관까지 걸어 내려갔다. 마지막 계단을 몇 번이고 디뎌보았다. 차라리 미끄럽기를 바랐다. 유별나게 계단이 미끄러운 날이라 넘어져 다치셨을 거라고, 다른 날이었으면 그럴 일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작년 말 보수를 마친 계단은 매끄럽고 튼튼했다. 계단 끝자락에 뿌려진 피를 넋 놓고 보았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머릿속을 들락날락했다.
인사성이 바른 아이였다. 이웃과 가깝게 지내며 정을 나누던 것이 당연했던 사회 속에서 일단 누군가 마주치면 꼭 인사를 하라고 배웠기에 줄곧 그래왔다. 그 흔한 이사 한 번, 전학 한 번 간 적이 없었다. 사춘기랄 것도 없던 난데 언제부턴가 이웃들과 인사를 하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이웃과 데면데면한 사이가 유지되니 다시 인사를 하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왜 안 하던 인사를 하지?’하고 생각할까 봐. 다시 인사할 ‘명분’이 없으니까, 하는 고약한 생각이 내게 속삭였다. 그 인사가 이유 없는 당연한 행위였던 데에 반해, 이제는 허울 좋은 예의 따위 서로 안 차리는 게 맘 편하다는 합리화가 더 편해진 셈이다. 놀란 맘을 진정시키려 집 밖을 서성이면서 문득 이웃과 인사 정도는 하는 것도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지나갔다.
좋고 나쁜 일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일은 훈훈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때론 그 따뜻함이 훈훈하면서도 못 견디게 아프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외손주 같다. 외손주. 그 말이 계속 맴돈다. 행주 짜듯 울어버려도 도통 머릿속이 푹 젖어 마르지가 않았다. 나 대신 그곳을 지났을 누군가라도 취했을 정도의 행동에, 따뜻한 마음을 비싸게 쳐서 받은 기분이었다. 누구라도 내 가치와 쓸모를 알아주십사 호소하는 하루가 꼬리를 무는 가운데, 이런 감정이 흐르는 하루가 더없이 복되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