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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서 Sep 16. 2022

내가 도망을 왜 가. 웰컴이다, 웰컴!

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도망치는 사람한테 비상구는 없어. 그니까 까불지 마라." - 극 중 공효진(동백 역)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로맨스코미디의 정석을 따라가는 듯했다. 주인공은 고아이고, 잘 나가던 남자친구에게 차였고, 미혼모가 된 후 한적한 시골에서 술집을 한다. 이런 수식어만 보면 '공효진(동백 역)'은 평범한 비련의 여주인공인 것만 같다. 남자 주인공인 '강하늘(황용식 역)'은 직업부터 경찰이다. 그저 멋있고 완벽한 남자 주인공이 연약한 여자 주인공을 구원하고 도와주면서 함께 사랑하는 '흔해빠진 러브스토리'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동백꽃 필 무렵>은 이러한 드라마의 공식, 클리셰를 절묘하게 비틀고 깨부쉈다. 그런 아픔이 있는 동백은 사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강인한' 여자였다. 인생에 있어서 행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던 동백은 항상 담담하고 묵묵하게 이를 극복해왔다. 동네 아줌마들의 따가운 눈치에 별 대꾸도 못하며 괴롭힘을 받지만, 가게에서 동백의 손목을 잡아챈 취객 '오정세(노규태 역)'에게 술 말고 다른 것은 팔지 않는다며 단호하고 소신있는 면모를 보였다. 이 모습은 용식이 동백에게 반하는 계기이기도 했다.


 용식은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었다. 이전까지의 로맨스물에서 완벽한 부자, 츤데레 등이 지배적이었다면, 용식은 썸 타면서 애매한 것보다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할 줄 아는 '상남자'였다. 항상 유쾌하면서도 선을 지키며 동백을 보호하고, 배려하고, 응원하면서 자신만의 사랑을 표현한다. 늘 동백에게 이쁘다, 귀엽다, 사랑스럽다, 멋지다와 같은 말들을 하면서 자존감과 자신감이 바닥이던 동백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장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기본적으로 로맨스코미디에, 의문의 살인범이라는 스릴러도 섞여있어 굉장히 신선한 재미가 있었다. 첫 화에서부터 동백이 결국 죽을 것처럼 복선을 깔았고, 동백과 용식이 조금이라도 행복해지려고 하면 어김없이 살인마 '까불이'의 경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동백이의 아들 '강필구'의 친아버지인 '김지석(강종렬 역)'도 빌런 아닌 빌런이었다. 그는 자신처럼 야구선수가 되고 싶은 필구를 부양하려는 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여기서도 용식과 종렬의 사랑 표현 방식은 큰 차이가 있었다. 종렬은 꾸준히 '돈'만 갖다바쳤다. 동백에게 값비싼 전복과 3000만원을 건네는가하면, 필구에게는 비싼 가방, 게임기, 장난감 등을 선물하고 고가의 음식들을 사먹인다. 

 

 반면, 용식은 경찰이라 재산은 적지만, 동백과 필구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서 위로하고 응원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에도 항상 도와주기 위해 등장하는 것은 용식이었다. 하지만 백마탄 왕자같은 완벽함은 아니다.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와주되, 동백이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신의 매력과 힘을 깨닫게 해주는 '조력자'인 것이다.


 동백은 '기적'도, '사람'도 믿지 않았다. 일평생 한 번의 기적도 없이 불행하기만 했고, 엄마와 남자친구에게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살인범의 위협을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용식을 만나면서 천천히 변해갔다. 정확히는 '변했다'기보다는 스스로를 구원하며 '성장했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도 그런 동백에게 점차 마음을 열고,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결말에 이르러, 모두 함께 노력하며 '까불이'를 체포했고, 동백의 어머니인 '이정은(정숙 역)'도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용식을 보며 "사람이 사람에게 기적이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던 동백은,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냈다. 드라마 내내 자신을 괴롭히던 강종렬의 코를 때리고, 까불이의 뒤통수를 맥주잔으로 후려갈겼다. 이 빌런들을 물리친 건 용식도 아닌, 동백 자기 자신이었다.


 전반적으로 각 인물들의 성격과 설정이 매우 독특하고, 성장해가는 스토리도 큰 울림을 주었다. 특히, 강종렬과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태도를 확실하게 정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았다. 이후 용식에게 달려가 첫 키스씬으로 이어지면서 메시지와 연출이 완벽하게 터져나왔다고 느꼈다. 


 드라마는 결국 우리도 좋은 사람들과 함께 싸우기도 하고, 사랑도 하며, 기적을 이루고, '당신 꽃이 필 무렵'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게 한 명의 시청자로서 '기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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