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는 자체적으로 생각했을 때에 보안이 필요한 내용인 것 같아서 비상계단 쪽에서 스마트 폰에 이어폰을 연결해서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렸고 그녀는 동영상의 내용에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는데 남편이 비상구의 문을 열고 지우를 불렀다.
“자기야. 연락을 받자마자 왔어. 몸은 괜찮아? 누가 크게 다쳤다고?”
“... 어, 필승 오빠. 나는 괜찮은데... 정우 오빠야. 음주운전 차량이 카페를 들이받아서 정우 오빠가 나를 구하려다가 크게 다쳤어.”
“... 저... 정우? 최정우? 그 잠적했던 아이돌 최정우를 말하는 거야? 자기 첫사랑? 우선 자기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확률이 좋았네. 그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기를 구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 그랬겠지. 그 현장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정우 오빠처럼 날 위해서 대신해서 희생해주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현재의 아내인 지우가 안전한 것을 확인하자 가슴이 퍽 차오른 이필승이 자신의 아내를 꽉 껴안으면서 묻는다.
“앞에 의자에 앉아있지, 아는 사람이 크게 다쳤는 데에 혼자서 여기서 뭘 보고 있는 거야?”
“... 아... 맞다! 자기야. 내가 다 설명해 줄게. 우선 이 영상들을 봐봐.”
그녀는 자신이 봤던 동영상들을 보여주었다. 필승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고 고등학교 수준의 물리와 대학교 1학년 수준의 수학 지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정우와 우기의 설명을 머리로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분을 이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만화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관점으로 바라봤으므로 이것을 상상력이나 망상이라고 생각했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시간 여행부터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진 외계인에 우주 특이점 대폭발을 막아서 우주의 역사 자체를 멈추겠다는 테러 조직이라니... 어쩌면 정우, 우기 부부가 둘 다 정신이 나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필승이 지우에게 말했다.
“자기야. 아니, 지우야.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 시대에 소형 타임머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 드라마 <삼체>처럼 외계 문명을 만나서 인류가 멸종 위기에 처하는 일이라든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아. 물론 이 말들이 다 사실일 수도 있지만 그건 M사의 만화 속에 나오는 타임 스톤이나 시간 여행처럼 상상에 지나지 않아. 이 영상들의 정보나 이 스마트 폰이 타임머신일 확률은 거의 0 퍼센트라고 생각해. 어쩌면 이 정보들이 사실인 것보다 정우 씨 부부 둘 다 조현병에 걸려서 망상에 빠져있는 게 더 사실에 가까울 수 있어. 자기가 너무 순진하고 착해서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야.”
“조... 현병? 그게 무슨 병인데?”
“... 사람마다 증세가 다르지만 포괄적으로는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 물질이 과다 분출되어서 망상을 하거나 흥분하거나 환각, 환시, 환청 등을 겪는 정신질환이야.”
“그럼 정우 오빠 부부가 둘 다 조현병이라는 거야? 오빠는 어떻게 이 병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아?”
“내 친구 중에 한 명이 조현병 환자라서 잘 알아. 걔는 지나가다가 눈을 사람의 눈을 마주치면 그 사람이 자신을 죽인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과에서 도파민 과다 분출을 억제해 줘서 도파민 수치를 낮추어 주는 약을 먹고서 일상생활을 살고 있어.”
“그래, 오빠가 그렇다면 그렇겠지. 그런데 조현병이 부부가 동시에 걸릴 수 있어? 정신 질환이 전염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그럼 나 지금 정우 오빠 휴대폰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세균 같은 걸로 감염되는 거 아니야?”
“자기야! 걱정하지 마. 그랬으면 나도 내 친구한테 조현병이 옮았겠지. 조현병은 5~10퍼센트 정도는 유전이고 코로나 때를 기준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다고 추정되는 환자 수만 약 50만 명이니까 가능성은 있는데... 다만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는 건 자기가 말한 대로 부부가 동시에 조현병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다는 거야.”
“오빠, 혹시 오빠가 기분이 나쁠까 봐서 못 물어봤는 데에 정우 오빠랑 내가 이어지고 오빠랑 정우 오빠의 아내가 이어져야 한다는 망상 때문에 질투심을 느끼거나 혼란스러움을 느끼는 건 아니지?”
“나도 남자니까 질투가 나기도 하고 내 삶에 네가 얼마나 큰 의미인데 아무리 미래의 역사가 그렇게 이어져야 한다고 해도 너와 살아온 나날들과 사랑 그리고 정들을 어떻게 한순간에 끊어 버리고... 설사 이 영상들 속의 말들이 사실이라고 해도 너랑 헤어지고 생전 처음 보는 여자랑 이어질 수 있겠어. 그건 용납 못해.”
‘-지이익’하며 비상구 입구 문이 또다시 열린다. 아까 음주운전으로 자동차를 타고 카페를 박살내서 지우를 크게 다치게 할 뻔하고 실제로는 최정우를 크게 다치게 만든 용의자다. 분명히 경찰에게 붙잡혔었는 데에 어떻게 빠져나왔는지 알 수 없다. 필승은 눈앞에 등장한 검은 모자를 쓰고 체격이 건장한 이 남자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정수리에서부터 오른쪽 볼까지 타고 내린 핏자국과 시퍼렇게 멍든 손목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 있는 망치를 보면서 이 남자가 그 음주운전자일지도 모른다고 강하게 확신이 들기 시작했고 내 아내를 실수로 죽이려고 했다고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찢어 죽이고 싶었는 데에 실수가 아니라 실제로 아내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정확한 물증 증거도 없고 필승, 본인이 프로파일러도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신원미상의 남자가 말했다.
“김지우, 이필승... 둘 다 스마트 폰 안에 있는 영상을 봤어? 못 봤어? 너희는 그 폰에 대한 가치를 몰라. 우기 박사는 그저 그 스마트 폰을 과거의 자신에게 보여줌으로써 시간 여행이 가능하고 그것을 연구해서 소형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함으로써 과거의 우기 박사에게 경고를 해서 타임머신 개발을 막으려고 했던 모양인데... 우기 박사는 반드시 타임머신을 차지해야 해!”
남자는 지우를 향해서 망치를 휘두르면서 달려왔다. 이때 필승은 영상의 내용이 사실일 경우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게 아니라면 스마트폰이 소형 타임머신이고 외계 문명의 침공에 가족을 잃은 미친 과학자가 그 충격으로 미쳐서 우주 대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때까지 시간을 되돌려서 우주 존재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는 공통의 망상을 가진 세 사람... 송우기, 최정우, 신원 미상의 남자가 전부 조현병을 앓고 있고 조현병도 각 사람마다 병세나 증상 그리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망상의 종류가 제각각인데 서로 장애에 대해서도 커밍 아웃하고 그것을 공유해서 서로를 죽이고 살리려고 한다는 확률이 희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