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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별 Mar 22. 2023

개똥같은 특허들

출원인들은 알까.

선행기술 검색 중 청구항이 개똥같이 써져있는 특허들을 보니 잡생각이 많아져서 생각 정리를 위해 글을 쓴다.


발명은 성(castle)에 비유할 수 있다. 특허는 성벽과도 같다. 좋은 특허를 늘린다는 것은 발명을 보호하기 위한 성벽을 보다 견고하게 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성전쟁을 할 경우 성벽이 아무리 견고하더라도 적군 모두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성벽을 뚫는 소수의 적군들만 상대하면 되므로 보다 수월하게 수성할 수 있다.


공을 들여 좋은 특허를 등록받는다고 하더라도, 회피설계를 통해 유사한 제품을 출시하는 경쟁사는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특허를 받아놓는다면 다수의 경쟁사들의 진입을 사전에 저지할 수 있으며, 특허권자는 소수의 경쟁자와만 경쟁하면 된다. 소수의 경쟁자 중에서도 일부는 미리 등록받아둔 특허를 이용하여 판매를 중단시킬 수도 있다. 특허조차 받아두지 않는다면 모든 경쟁사들이 유사한 제품을 출시해서 시장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게 증가한다. 오랜 기간 개발한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견고한 성벽을 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단순한 건 다수의 특허를 받아서 다방면으로 제품을 보호하는 것이다. 한 제품에 대해 등록된 특허의 수가 많을 수록, 경쟁사는 그 모든 특허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회피설계해야 하므로 회피 설계에 많은 시간과 돈이 들게 된다. 즉, 경쟁사들이 진입 장벽을 높힐 수 있다.

또 다른건 하나의 특허를 등록받더라도 발명을 보호받기 위한 합당한 권리범위를 가지는 특허를 등록받는 것이다. 특허의 권리범위는 청구항에서 나온다. 청구항에 기재된 권리범위가 발명에 비해 지나치게 협소할 경우 해당 특허는 오히려 특허권자에게 독이 될 수 있다. 이는 모래알로 쌓은 성벽과도 같다. 


몇몇 사무소에서 등록된 특허들의 청구항을 보면 진짜 가관이다. 등록받아도 아무런 쓸모 없는 매우 좁은 권리범위를 가진 청구항들로 가득 차 있다. 한 페이지 분량은 거뜬히 넘는 청구항들.. 청구항에 잡다한 내용을 써서 길게 늘리면 권리범위가 좁아지게 되는데, 그럼 상대적으로 등록가능성은 증가하게 된다. 단지 등록을 위한 청구항인 것이다. 특허 명세서 작성 시에 별로 큰 고민 없이 작성한 것들.. 


출원인들 중 단지 '등록'만을 목적으로 특허를 출원하고자 할 경우 좁은 권리범위를 가지는 특허를 등록받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발명을 진정 보호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치명적이다. 자신의 제품이 성공해도 경쟁자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모래성을 쌓은 것이다. 등록받은 후에는 다시 청구항을 고칠 수도 없다. 모래성이 겉으로 보이게는 견고해 보이지만 쉽게 무너지는 것처럼, 자신의 발명을 보호할것이라고 굳게 믿은 특허가 배신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출원인은 결국 나중에 자신의 제품을 따라하는 경쟁사가 나오더라도 특허로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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