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이야기 #연작소설 #힌트를 주세요 #에세이적소설 #교묘한 공격
우리 어른들도 모두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나 역시 지고 지난한 교우관계의 그물망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초등학생이라고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모르는 예외대상은 아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땐, 교환일기가 꽤 유행했다.
친구가 있다는 건, 함께 교환일기를 쓰는 그룹이 존재하는 것이고
교환일기를 같이 쓸 친구가 없다는 건, 단짝친구도 없고, 같이 어울려 노는 그룹 사이에도 끼지 못한
비탈자 신세를 말한다.
하지만 이 교우관계의 촘촘하고 은밀한 관계 갈등은 어른이 알아차리기도 어렵고
선생님, 부모님 앞에서 대놓고 하는 말과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도움을 청하기도 받기도 어렵다.
심지어 어른들이 개입하면 아이들은 일이 더 커질까 봐 무서워서,
아기같이 어른들에게 고자질했다는 누명을 쓰기 싫어서
선뜻 도움의 손을 건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요즘 시대는, 예전과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교우관계의 힘듦을 집에 토로하는 자녀들이 있으면 부모들은 걱정이 산까지 쌓여,
전화를 들었다 놨다, 문자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몇 날 며칠 아이가 '힘들다, 학교 가기 싫다, 외롭다, 우울하다, 슬프다, 나 왕따 같다'
라는 말이 나오면 그때부터 화살을 교사에게 돌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 생각보다 흔하다.
앞뒤 다 잘라먹고, 교실에 있는 교사는 무엇을 했느냐, 우리 아이가 이렇게 마음 아파하는 건 알고 있었냐를 시작으로 무한 불신을 보내면 너무 무섭다.
비밀스럽고 교묘히 감춰진 관계 갈등을 매 순간 포착하는 건 너무 어렵고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열심히 해도 아이가 집에 가서만 교우관계 갈등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엔
교사도 정말로 많이, 한. 트. 가 필요하다.
할 수만 있다면 분신술을 써서 나를 몇 명이나 만들고 싶다.
남녀 화장실에 각각 1명, 복도에 1명, 교사 책상을 제외한 교실 사각지대에 한 명씩 3명
아니면 내 귀를 도청장치로 만들어서 학생들 의자에, 사물함에 부착하고 싶기도 하다.
또는 내 눈들이 cctv처럼 모든 걸 보고 기억할 수 있도록 몰래몰래 이곳저곳 아이들의 이야기를
시시 탐탐 듣고 싶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은근하고 교묘하고 몰래 하는 공격을 알 수 만 있다면
좋겠다. 험담, 넌 되고, 넌 안 돼라는 말, 사실유무랑 상관없이 떠도는 소문들의 근원지, 아이들 사이에서의 무시와 나쁜 눈빛들, 비꼬는 말들 등... 그런 것까지 다 알고 싶진 않지만.. 알아야 대처할 수 있기에 난감하다.
신체공격도 무섭지만 관계공격은 더 표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조기발견, 개입이 힘들다.
그리고 어른들은 쉽게 쿨하게- 생각하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도 아이들 사이에서는 엄청나게 슬프고 불안한 사례들도 많다.
sns가 발달함에 따라 그 양상은 더욱 넓어지고 뉴 업데이트 되면서 젊은 층에 속하는 교사들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 아이들 사이 관계 갈등을 마주하면 입을 다물기 힘들다.
모든 게 징벌적 체벌로 마무리되지 않기 위해,
갈등을 잘 해결하고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불안한 감정을 느낀다는..
그 어려운 실존불안의 감각까지 일깨워주려고 하면 머리가 터질 듯하다.
그러나 현명하고 슬기로운 보호자들은 간혹 문자로, 전화로 한. 트. 를 주신다.
아이가 집에서 어떤 말과 행동으로 힘들어하고 있는지 알려주시며, 학교에서는 어떤지 물어봐주시고
아이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고 종합적으로 알기 위해 먼저 물어봐주신다.
그러면 너무 감사하다.
힌트를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보호자님 저도 열심히 하지만 ㅠㅠ
저도 순간 놓칠 수도 있었던 아이들에 대한 힌트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더 세밀하게 관찰하고 살펴볼 수 있어요.
저도 보호자님께 드릴 수 있는 힌트가 있으면 꼭 연락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저에게 이렇게 물어봐주세요 하고는 공손하게 답한다.
나는 신이 아니다.
나도 힌트가 필요하다.
교육하는 교사도 힌트가 필요하다.
세상의 교묘히 감춰진 아이들 사이의 공격은 더 업데이트되고 있다.
우리 함께 힌트를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