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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Nov 20. 2024

#엄마13 취향에도 계급이 있나요

#엄마13-같은 엄마, 다른 엄마 (짧은 에세이적 소설) #명품이 뭐라고

명품 가방 계급도를 보며 나는 어느 계급의 취향까지 도달했나 살펴봤다.

나만의 기호는 없었다. 기호는 중요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계급 안에서의 기호는 있어도 계급을 뛰어넘는 기호는 넘볼 수 없었다. 


나는 스스로 자부하는 우아한 지성, 그리고 손가락질받지 않는 미모를 평균 이상으로 갖췄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엄마의 쌈짓돈까지 써가며 수많은 투자를 받았다. 


투자만 받진 않았다. 스스로 꾸준히, 열심히, 성실히 관리했다.

투자받은 사교육비가 아깝지 않게 입시공부를 치열하게 했고 

피부과에 투자한 돈이 아쉽지 않게 꾸준히 콜라겐 마스크팩, 각종 선크림 등을 발랐다. 


특히

피부과에서 "00님, 마취 크림 바르겠습니다."라는 말은 얼마나 들었는지 모른다.

도자기같이 매끈한 피부는 아니지만 적어도, 코에 있는 피지가 덜 보이도록, 촉촉한 물광피부 비스무리까지 가려 노력했다. 이제는 여유 있게 말한다. 올바르게 누워있는 게 힘들어 베개를 머리에 받쳐달라는 말을 수줍음 없이 건넨다. 


그리고 이제 나는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직장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까탈스럽고, 유연하지 못했으며, 공동체에 대한 회의감을 주기도 했지만

작은 성취감, 적당한 사회 인맥, 유연한 공동체를 추구하며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갔다.


누군가 나에게 '당신은 무슨 일을 하나요?'라고 물어봤을 때, 적어도 한 단어로 이야기하면 

모두 "아- 그렇군요." 답할 수 있는 직업을 갖기까지도 정말 힘들었다.


그렇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다. 자칭 프롤레타리인 계급이라며 스스로를 웃음으로 승화하려 했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진 자가 아닌 얻어내야 하는 게 많았던 나는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의 서포트를 받으며 컸다. 엄마는 감독이었고 나는 선수였다. 

엄마는 자신의 경제자본을 최대한 끌어모아 나의 학력자본과, 문화자본을 만들어주기 위해 열과 성을 다했다.



지금 나는 명품 가방 계급도를 보며 생각한다.

나의 엄마는 날, 최소 어느 계급까지 올려두고 싶었던 걸까.


직장에서 나름 피눈물, 땀방울 흘려가며 얼룩진 급여였지만 난 자랑스러웠다. 내가 스스로 번 돈이니까. 

가족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남자한테 사 달라는 것도 아니고 

내 돈으로 내가 직접 명품샾 A, B, C사를 누비며 

갖고 싶은, 가져야만 할 것 같은 가방을 샀다.


내 드레스 룸 한 층에 나란히 앉아있는 가방을 바라보며, 

'아 이 정도면 됐어. 여기까지-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게 나의 취향 계급의 한계였던 것 같다.


나의 가방은 명품 계급도 안에서 나란히 한 계급에 놓여 있었다.

그 위층, 그리고 그 위위층의 피라미드에 있는 가방의 가격은 내가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엄마의 드레스룸에는 어떤 가방이 있을까?

엄마는 어느 계급까지 상상했던 걸까?

현재 그녀는 어떤 가방을 아직 꿈꾸고 있을까?


결혼시장에서 최고점을 받을 수 있는 결혼 적령기 분위기에 휩쓸려 지금 나는

커플 매니저 앞에 앉아 있다.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 놓았던 가방을 슬며시 등 뒤로 놓았다. 


매니저는 눈웃음을 잊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명품 시계 계급도와 명품 가방 계급도 샘플을 꺼내며

나의 가방 취향 언저리가 어떤 시계 취향 언저리까지 건널 수 있는지 아주 고상하고 우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그 앞에서 나는지. 덕. 체를 겸비하고 있다고 자부한 나 자신을, 그 계급 어느 경계까지 놓았고

어느 경계까지 갈 수 있나 무의식적으로 눈알을 굴려버렸다. 참 씁쓸했다.


나의 취향, 엄마의 취향

엄마의 취향, 나의 취향

우리의 취향이 계급에 묶이는 게 싫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나는

자본주의에 살아가는, 

평범한 근로자로서,

독립한 어른으로서, 


누군가가 셈할 계급층의 언저리 밖으로 튕겨지고 싶지는 않다.




친구에게 톡이 왔다. 

[하- 진짜 열받아. 우리 엄마한테 가방 사줬냐 안 사줬냐, 무슨 브랜드냐고 꼬치꼬치 예랑한테 묻는

예비 시어머니 어떻게 생각하냐? 아직도 이런 시댁이 있네. 안 되겠어. 억울해. D사 가방을 받아야겠어.]


난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난 어떤 기호와 취향을 가져야 할까?

난 그 계급도를 무시할 수 있을까?


그 계급과 상관없는 나 자신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그 계급과 상관없는 상대를 내 결혼 상대로 고를 수 있을까?


우리 엄마는 과연 그 명품 계급도를 어떻게 지금 바라보고 있을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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