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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이 Dec 04. 2024

#연작소설 (12)최애의 호구-난 어떤 호구

<세 단어 습작소>(랜덤 단어 3개) 오감, 피부, 시선

대학에 입학하고 기숙사에 살고 있는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평소 언니는 소녀에게 H의 포토카드, H의 콘서트 티켓값을 용돈으로 주며

나의 덕질을 응원해 줬다. 덕분에 질리지 않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어떻게 보면 생을 버텨내는

동생의 덕질을  기특히 여겨줬다.


엄마와 진로 문제로 다툰 후 집을 나간 언니는 소녀에게 언제나 미안함이 있었다.

엄마의 관심과 애정이 소녀에게 간 이후 자신은 편안해졌지만

소녀에게 많은 짐을 맡기고 떠난 느낌을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언니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녀를 나무라는 말부터 시작했다. 평소 덕질을 응원하던 기억은 다 잊은 것처럼.


"야! 내가 걔 아니라고 했지? 눈빛이 마음에 안 든다고. 넌 진짜 사람 보는 눈이 왜 이렇게 없냐? 정신 차려!

H, 걘 절대 아냐"


뾰로통하게 언니는 'H'의 새로운 기사가 터지자마자

내가 피부로 이 사실을 느낄 새도 없이 전화로 따박따박 나를 훈계했다.


중립기어를 박고 있다며,

그래도 음악적 능력은 인정해 줘야 한다,

그래도 그의 선량했던 선행은 우리가 기특히 여겨줘야 한다던 몇 남은 팬들조차


배신자 H, 천재돌은 무슨! 가짜돌 주제에! 라며 배신, 가짜, 싸가지라는 단어의 수많은 조합으로

이곳저곳에 악플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이까지는 어떻게 봐주겠는데, 그래 너 동안이다! 소속사가 꼬셨겠지 등의 시선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소녀는 눈곱을 뗄 시간도 없이 핸드폰을 잠금 해제하고 연예부 메인 기사 코너로 갔다.


작사와 작곡으로 여러 히트곡을 탄생시켰던 H는 평소 천재돌, 갓생아이돌 멤버로도 유명했다.

소녀는 그런 H가 좋았다.


종이인형처럼, 꼭두각시처럼 만들어진 틀 안에서 연습하는, 성실한 아이돌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을 하는, 자신의 영감을 음악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의 재능이 매혹적이었다.

자신과는 달랐다.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는 모습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재능을 펼치는 삶은 축복받았다 생각했다.


그래서 AI 인공지능이 만든 곡들과 너무 흡사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처음에는 부정했다.


H의 곡을 딥러닝한 후 AI가 따라한 거겠지.

하지만 그렇기에는 앨범이 발매된 날짜와 AI가 작사, 작곡한 파일 생성 시간 차이가 너무 컸다.


최근 AI 열풍이 불며

어느 분야서든 AI가 그림도 그려주고, 글도 써주고, 노래도 만든다는 것은 알았는데

이렇게 메가히트한 곡까지 사본이 있을 줄은 몰랐다.


AI열풍과 다르게 저작권 법은 그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했고 기술과 법 사이의 간극에서 탄생한 H의 곡들은 너무 멋졌다.


소녀의 꽃밭에, 최애의 정원에 잡초의 씨앗들이 너무 많이 뿌려졌다.

민들레 홀씨를 불듯이 불꽃 소녀의 뜨거운 입김으로는 이들을 날려버리기 힘들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직 밝혀진 건 없다고.

소속사는 확인 중, 아티스트 H는 'not fault'라는 메시지로 sns 프로필을 바꿨을 뿐이다.

무엇이 fault고 무엇이 not fault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녀의 오감이 열리고 있었다.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 모두 호구를 두기 위해 열리고 있었다.


아문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 같지만

그 상처를 다시 꿰매기 위해,

호구를 두어야 될 것 같은데

이제는 내가 H의 어떤 호구인지

소녀 자신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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