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13-같은 엄마, 다른 엄마 (짧은 에세이적 소설) #김장군단
20대 때 일이다. 엄마랑 둘이서 배추 15포기 김장을 하다, 부엌 한 켠에 주저앉아 울먹이며 말했다.
"힘들어, 죽겠다"
감칠맛을 위해 생새우를 한 번에 몰아넣은 엄마는 정확히 5초 후에 "어머! 이걸 어째! 물에 한 번 헹군다는 게..." 하며 망연자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지금보다 두 다리에 힘 빡주고 허리도 꼿꼿이 세울 수 있었던 20대 나이였지만
김장의 출발부터 마무리까지 모든 게 서툴렀고 어색했다. 한 마디로 나는 느려터진 도우미였다.
이제는 김장의 몸집이 커졌다. 세 명이 모이면 하나의 세력이 된다는데
내가 데리고 온 남편, 언니가 데리고 온 형부, 그리고 꼬꼬마 손으로 뭐라도 해보고 싶은 조카 1명 덕분에
알이 찬 김장 배추 속처럼 김장 군단의 몸집은 통통하다.
나는 50대의 엄마를 기억한다. 내가 20대일 때, 엄마는 50대였다. 내 뇌는 그때의 엄마를 뚜렷이 스캔했다.
엄마는 현재 60대이지만 나는 50대의 엄마가 호령하던 김장군단을 잊지 못한다. 나와 엄마 둘 뿐이었지만 우리는 꽤 진지했다. 하도 김치 맛을 봐서 싱거운지 매운지 달달한지 에라 모르겠다-하며 정리하자 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 60대 중반에 들어선 엄마는 김장 군단이 생겼지만 김장 후유증을 일주일 이상 겪는다.
김장을 거진 마치고 꿋꿋이 설거지를 하는 내게 " 다 두고 얼른 가라, 가는 게 도와주는 거다 " 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건 다 새뺄간 고춧가루 같은 거짓말이다.
예전엔 그 말이 송곳처럼 따갑게만 들렸지만 이제는 엄마의 잔소리가 뭉툭하게 들린다.
과거엔 정말 내가 도움이 안 됐겠지만, 내가 설거지를 하고 나면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했겠지만,
나도 짬이라는 게 있다.
결혼하고 집안살림을 하면서, 이렇게 남아버린 설거지 거리들이 얼마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지
뽀드득뽀드득 씻기려다 손가락 관절만 나갈 텐데 하는 생각쯤은 한단 말이다.
거기다, 엄마가 체력적으로 힘들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그러다 그 짜증이 터지면
그 불꽃은 딸에게 떨어진다. 그전에 후다닥 설거지를 하고 가야, 바닥을 닦고 가야
그 새빨간 고춧가루들을 다 씻겨내고, 쓸어버려야 내 마음이 편하다.
어쩜, 고춧가루 같은 거짓말을 하며 가라고 등을 떠미는지.
"됐어! 하는 김에 그냥 해! 나중에 엄마 혼자 하면 더 골병나!" 하며 나는 뜨거운 물을 팍- 틀며 김장 양념이 묻은 도구들을 씻긴다.
김장하며 입던 옷을 벗어던지고 세탁기에게 빨래를 맡긴 채, 아구구구구 하며 이제 소파에 누웠는데
엄마에게 톡이 왔다. '이번 김장 잘 된 것 같다. 입맛 돈다.'
입맛이 돈다는 말은 곧 맛있다는 말이다. 입맛 까다로워서, 식당 가서 김치는 집어 먹지도 않는 엄마가
입맛이 돌면 성공이다.
역대 11월 중후반에 저장된 사진 앨범은 김장 사진으로 가득하다.
1년 전, 2년 전, 거슬러 10년 전까지 올라가 김장 시즌 사진을 넘기다 보면
서서히 엄마의 정수리 머리카락이 비어 가는 것도 보이고, 어느 해부터인가 모자를 쓰고 있는 엄마도 보인다.
세월의 흐름이 김장 사진에서 느껴진다.
날씨가 추워지고, 연말이 다가오는 때에 김장을 해서 그런가.
마음이 몰랑몰랑해지다가도,
언제까지 우리가 함께 김장을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마음이 살짝 무거워진다.
김장 군단에 누가 못 왔었나, 왔었나도 보이며 그때, 이런 일이 있었지. 그래, 그런 일이 있었지. 하며 아련해지기도 한다.
이번에도 다양한 컷으로 김장 컷을 찍었다. 자동으로 업로드되는 사진들이
이번 김장 시리즈 몸집을 한 뼘 키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