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미션 2> #교실이야기 #에세이 #리스너의 자세 #실패안전지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다리가 떨린다. 후들후들- 상체는 멀쩡한데 떨리는 다리를 어떻게 할 수 없다.
어떤 이는 목소리가 떨린다. 상체, 하체 모두 굳건히 서 있는데
바이올린 활 끝에 새어 나오는 지이잉-처럼 미세한 진동이 목소리에 자꾸만 섞여 나온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어서 옆 사람까지 들릴 것만 같다.
요동치는 심장을 멈추려 숨을 들이쉬고 내뱉지만 그 마저도 소심하게 흡- 휴-- 반복만 할 뿐이다.
고개를 들 수가 없다. 모두가 나를 평가하려고 앉아 있는 것 같다.
한 곳만 응시하려 했지만,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내 눈을 쫒는 것 같아 그마저도 어렵다.
푹 숙인 고개를 들려고 해 봤지만 소용없어 땀이 난 손을 애써 꽉 잡아본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집에서 거울 보고 외웠어도, 눈감고 외웠어도, 열심히 보고 또 보고 할 말을
적어서 외웠는데도 갑자기 머리가 하얗게 백지가 된다. 순간의 적막감을 깨뜨려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
얼굴이 빨개진다. 귀만 빨개져도 쑥스러운데, 양 볼이 빨개지니 지금 내가 긴장된다는 게
다 들켜버린 것 같다. 그래서 더 빨개지기 시작한다. 뜨거운 스팀이 얼굴 전체로 퍼져 나간다.
목소리가 빨라진다. 고속열차를 타고 빨라진 목소리는 무슨 말을 하는지 사람들이 알아듣기 힘들다.
빨리 끝내고 후다닥 나의 안온한 자리로 돌아가려는 생각밖에 없다.
내가 생각한 게 틀린 말일 것 같아서, 오답일 것 같아서 말을 못 하겠다. 망신당할 것 같아서
차마 입술이 떼어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를 받고 싶지 않다. 나는 정답만 말하고 싶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아이들도 그렇다.
할 수 있어!
-아니할 수 없어.
용기 내!
-용기가 안 나.
괜찮아.
-안 괜찮아
때론 누군가 건네는 격려가 부담스럽다. 아이들도 그럴 수 있다.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박수 대신 반짝반짝 빛나는 손모양을 보여주듯이
우리 반 아이들도 반짝반짝 조용한 응원을 보내준다.
"소리가 안 들려요!"
"우리가 더 조용하면 돼.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더 귀 기울이자"
목소리를 내는 사람에게가 아닌,
목소리를 듣는 사람에게 격려를 준다.
"일어나서 이야기해"
"아니야, 앉아서 이야기해도 괜찮아. 우리가 앉아 있는 친구를 쳐다보면 돼."
"그거 아닌데?!"
"실수할 수 있어. 근데 우리에게 엄청난 힌트를 줬네. 많은 친구들이 착각할 수 있는 답이었거든.
이 힌트 덕분에 도움이 됐어."
" 답이 헷갈리는 친구를 위해 힌트,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 있나요?"
"어디 읽어야 하는지 모르나 봐요."
"그럼 가르쳐주면 되지."
아이들은 멍- 때리며 공상에 빠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오개념의 함정에 자주 빠진다.
아이들은 주목받는 것이 힘들다.
우리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은근슬쩍 아이들에게 처음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을까?
관점을 바꿔서, 우리가 함께 발표 연습을 하고 있다고.
자기표현을 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다.
여기는 [실패 안전지대]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네. 안심한다.
서로가 응원해줘야 한다. 선생님이 앞장서야 한다.
혼자 발표하는 것이 마치 고층에서 내가 뛰어내리는 기분일지 모른다.
그럴 때 선생님과 친구들은 학급에 안전한 에어매트를 깔아줘야 한다.
발표의 충격을 흡수해 주고, 상황에 따라 그 크기와 두께를 조절해 줘서 안전하게 아이가
뛰어내릴 수 있도록. 안전하게 발표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도와줘야 한다.
스피커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리스너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필요하다.
리스너의 자세를 바꾸면
스피커가 켜진다.
조금씩 조금씩 볼륨이 켜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