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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랑 바깥면에 있는 사람들_<해피투게더>를 보고

by 낭만 탐정

연애는 내 전공이 아니야. 오히려 연애라는 건 따분해. "네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을 안 만나봐서 그래"라는 말을 10년 넘게 듣고 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생각은 ‘역시 연애는 내 전공이 아니다’라는 확신뿐이었어. 난 오히려 연애를 제외한 사랑의 이야기 가 재밌어. <칵테일 러브 좀비>, <쇼코의 미소>, <아가미> 등에사 나오는 관계처럼. 세상에 정의하지 못하는 사랑이 가득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관계를 보고 있자면 오히려 더 공감되면서 울컥한단 말이지.

<해피 투게더>를 처음 봤을 땐, 뻔한 사랑 이야기처럼 느껴졌어. 아휘와 보영의 사랑은 참 사람 피곤하게 만들지. 마치 “아 그냥 헤어지라고~ 그럴 거면 왜 만나는데.”를 50번 말하게 하는 친구의 연애 상담처럼. 싸우고 사랑하고의 반복. 참 지루하지 않아? (물론 그런 이야기를 아름다운 미장센과 배우들의 연기, 감정선으로 보 여주니 재밌긴 했어.)

638384329772118750_0.png 장, 출처 <해피투게더>

무뚝뚝한 아휘가 처음 웃는 장면이 언제인지 찾아봤는데 장과 있을 때더라고. 장과 있을 때, 아휘는 피곤하지만 편안해 보여. 목소리 톤도 낮아지고 감정적으로 차분해 보이지. 보영과 아휘가 휘몰아치는 폭포 같다면 둘은 태풍 후 잔잔한 바다 같아. 장은 아르헨티나에서 아휘와 함께 일하는 요리사야. 아휘처럼 타국인 대만에서 와서 여러 나라를 여행 중이야. 장은 아르헨티나의 생활을 정리하고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우수아이아’라는 곳으로 떠나기로 해. 떠나기 전, 아휘와 술을 마시며 녹음기를 건네지.


“한마디 해 봐. 넌 여기서 내 유일한 친구였어. 기념으로 간직하려고, 사진은 싫어.”

“마음속에 있는 거 아무거나 말해봐. 슬픈 일도 괜찮아. 세상 끝에 묻어버리고 올게."


638384330471950531_0.png 아휘, 출처 <해피투게더>

아휘가 계속 부끄러운 듯이 피하자 장은 혼자 놀고 올 테니 뭐라도 얘기하라며 자리를 비켜주지. 우수아이아 등대에 도착한 뒤, 재생한 녹음기엔 한 남자의 우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그 후 장은 아휘를 찾기 위해 아르헨티나에 가고, 아휘는 장을 보기 위해 대만에 있는 장의 부모님 가게로 향하지. 서로 엇갈려서 보진 못했지만 가게에 붙어 있는 우수아이아 사진을 보고 아휘는 미소를 지으며 떠나. 언젠가 다시 볼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겠지.

사랑한다고 말해도 죽도록 싸우는 사랑도 있는 거고 사랑이라 말하지 않아도 계속 그리워하는 사랑도 있는 거더라. 미워도 그건 사랑이라 부르고 사랑이라 부르지 않아도 사랑이라 정해. 정의되지 않는 사랑은 오히려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들보다 더 진실성 있는 것 같아. 정의되지 않은 것은 양식이 없고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게 해 주니까. 연애는 삶을 다채롭게 해 주지만 이런 다양한 형태의 사랑은 내 삶을 좀 더 단단하게 해주는 것 같아.

내가 말하는 사랑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 사람 그리고 관계를, 연말에 찾아보길. 사랑이라 부르는 것, 그 바깥면에 있는 사람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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