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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ssy Aug 21. 2023

친정엄마와 함께 열무김치를 담다

모든 김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하나 보다

우리 식구는 친정엄마표 열무김치를 참 좋아한다.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짐 중 하나가 열무김치다.


최대한의 신선도를 위해 열무를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이틀 전에 샀다. 엄마는 열무를 다듬고 또 다듬어 먹기 좋게 자르신다. 내가 곁에서 함께 다듬으려 했지만 워낙 당신의 방식이 있다 보니 쉽지 않다.(난 겉에 있는 멀쩡해 보이는 열무도 쓰고 싶지만 엄마는 버리신다.)


다듬어진 열무는 사이사이 굵은소금을 뿌려가며 큰 통에 차곡차곡 담고 마지막으로 소금을 여둔 소금물을 부어 커다란 쟁반으로 잘 덮어다.


열무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마늘, 홍고추, 풋고추 그리고 양파의 양도 어마어마하다. 엄마와 둘이 앉아 그 많은 마늘을 까노라니 손가락이 얼얼하다. 엄마는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으시느라 바빠서 그런지 몰라도 손가락에 대해선 별말씀이 없으시다. (결국 난 일주일 정도 후 손가락 두 개가 한 마디씩 왕창 껍질이 벗겨졌다)


풋고추와 홍고추를 깨끗이 닦고 으로 갈라서 안에 예쁘게 앉아있는 씨앗들을 모두 빼내고 어슷 썰기로 썰어 큰 통에 한가득 담아둔다. 껍질을 벗겨둔 양파도 얇게 썰어 함께 담는다. 이제 마늘을 얇게 저미듯 썰어야 하는데 이놈의 아린 손가락이 회복될 기미가 이지 않는다.


엄마는 당신이 해야 하는 일이라며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하시더니 그 많은 마늘을 모두 0.5mm 두께로 얇게 저미신다. 난 아린 손가락이 괜찮아졌다고 거짓으로 둘러대보았지만 사실이 아닌걸 눈치채셨는지 아니면 정말 나의 칼솜씨를 믿지 못해서인지 곁을 주지 않으신다. 손이 많이 아리셨을 텐데..


이제 보리물을 만들 차례다. 큰 곰솥에 보리를 한가득 넣고 물을 조금 붓는다. 커다란 나무 주걱으로 휘휘 젓고 또 젓고 물이 거품을 물고 부풀어 오르면 다시 불을 좀 낮추고 찬물을 반 바가지 추가한다. 그런 식으로 보리물을 삶으면 서 있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도 길어질 것 같아 그냥 한 번에 찬물을 한가득 붓고 천천히 우려내면 되지 않겠냐고 슬쩍 운을 떼어봤지만 그럼 맛이 없다 하신다. 에효..


허리도 아프신 엄마가 내내 서서 그러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 불편한 나머지 난 내가 할 수 있으니 엄만 좀 앉아계시라고 어렵게 설득했고 겨우 이길 수 있었다. 엄마 눈을 피해 살짝 넣는 물의 양을 늘려갔다.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길고 긴 보리물 끓이기가 끝나고 조금 식힌 후 보리를 걸러내는 작업을 했다. 충분히 불려진 보리를 보니 보리밥에 나물을 한가득 넣고 비빔밥을 해 먹고 싶은 맘이 들었지만 일단 하던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


충분히 절여진 무를 대충 헹궈내고 거기에 식혀둔 보리물을 붓고 썰어둔 마늘, 홍고추, 풋고추 그리고 양파를 넣고 버무린다. 이제 대충 다 되었나 보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인도네시아로 가져갈 맛있게 담가진 열무김치를 통에 담는다.


그런데 엄마가 한 마디 하신다.

"대공사가 이제 잘 마무리되었네. 너 가고 나면 대공사 한번 더 해야지. 오빠네도 주려면."

'뭐라고? 이렇게 하루종일 둘이서 해도 겨우 해낸걸 이제 혼자 하시겠다고?'

난 할 수없이 잔머리를 굴린다.


"엄마, 아무래도 무게초과로 다는 못 가져갈 것 같아요. 그냥 딱 반정도만 가져갈래."

"무슨 소리야! 강서방도 좋아하고 애들도 좋아하는데 다 갖고 가!"

"아냐, 그럼 다른걸 못 가져가요.. 남은 건 오빠들 챙겨줘요."

다 갖고 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지만 도움 없이 홀로 그 고생을 하게 내버려 둘 순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며느리들 불러서 같이 하자고 할 위인도 못되고..


고생은 엄마가 스스로 원해서 하시는 거니 누가 뭐라 할 수도  없다. 답답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 그래도 몸이 자유로우실 때 자식들 챙기느라 하시는 고생은 즐거우시겠지.. 그것마저 못하게 되실 때 상실감이 얼마나 크실까.. 하며 나 자신을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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