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을 버스에 두고 내리다
뭉치남편 이제 사고는 좀 그만 칩시다
약 3주간의 한국 일정 중 생긴 일이다.
나와 가벼운 오전 산책을 마치고 샤워하고 남편은 나갈 채비를 한다. 그만둔 회사 동료분들끼리 조촐한 저녁 모임이 있단다.
본인 휴대폰과 긴팔셔츠, 그리고 교통이용 및 결재를 위한 내 신용카드 하나를 챙기고 버스를 타러 간다. 남편을 보내고 나는 집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떠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 남편..
그의 흥분된 목소리를 듣는 동시에 내 심박수도 급히 증가한다.
"여보세요, (거친 숨소리가 들리며)나 정말 죽을뻔했다."
"왜?? 무슨 일인데??"
"휴대폰을 버스에 두고 내리는 바람에 버스랑 경주도 하고 레이싱도 하고 아이고야.. 진짜 십년감수했어.. 인도네시아 복귀비자도 휴대폰에 있고 모든 중요한 정보들이 전부 휴대폰에 있는데 분실했으면 인도네시아 복귀도 못할 뻔했다 진짜..ㅠ"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댄다.
내용파악은 둘째치고 일단 사고 수습완료를 인식하는 순간 덩달아 가빠진 내 숨은 원래 상태로 다시 돌아간다.
내막은 이랬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버스를 탄다.
에어컨 바람으로 너무 차가워진 버스 안 공기로 인해 추위를 느낀 몸. 남편은 가방에서 챙겨간 긴팔셔츠를 꺼내 입는다. 옷을 꺼내 입느라 뒤척거리는 동안 바지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스르륵 좌석으로 빠져나가 버린다. 곧 내려야 하는 정거장이라 휴대폰이 떨어진 걸 인지하지 못한 채 버스에서 내리고 만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휴대폰을 두고 온 걸 알아차리고 즉시 뛰어간다. 이를 알 리 없는 버스 기사님은 다음 정거장을 향해 버스를 출발시킨다. 왕년에 마라톤 풀코스를 세 시간 남짓의 좋은 기록으로 달린 남편도 버스의 동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경주에서 패하고 만다.
무조건 방금 내린 버스를 잡아야 하는 그는 택시를 찾아봤지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나 보이지 않아 할 수 없이 뒤따라 오는 다른 번호의 버스에 올라탄다.
그리고 버스 기사님께 긴급 구호 요청을 드린다.
"기사님, 제가 저 앞에 가는 버스에 실수로 휴대폰을 두고 내렸습니다. 좀 따라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요? 어쩌다가 휴대폰을 두고 내렸습니까? 걱정 말고 타세요. 버스비는 내지 마시고요."
요즘 이런 버스 기사님이 계시다니..
남편이 앞에 가는 버스를 쫓기 위해 탄 버스는 열심히 내달린다. 그 와중에도 승객을 태우고 내려주는 기사님의 본분은 200% 완수하시면서..
곧 남편이 휴대폰을 두고 내린 버스와 같은 번호를 발견한다. 자신이 폴더 휴대폰이라도 된 듯 남편은 몇 번의 감사인사를 드리고 내려서 앞의 버스에 오른다.
아뿔싸.. 얼마나 빨리 왔는지 남편이 휴대폰을 두고 내린 차 앞에 배차된 버스를 잡은 거다. 다른 기사님이 운전하신다. 남편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버스 정류소에서 다음 버스를 기다린다. 곧 이어 다음 버스가 도착하고 타는 쪽 문이 열린다.
남편은 얼른 올라타서 묻는다.
"기사님, 아까 제가 이 버스를 탔는데 실수로 좌석에 휴대폰을 두고 내렸지 뭡니까.. 죄송하지만 좌석 좀 확인만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아.. 안 그래도 아까 다른 손님이 오셔서 좌석에 휴대폰은 떨어져 있더라며 챙겨주고 가셨어요. 이거 맞으세요?"
"네네. 맞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기사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휴대폰 분실 사건은 종료되고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힐 새도 없이 곧바로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남편은 <대한민국은 아직 살 만한 곳이야. 한국 진짜 사랑해. 진짜 최고야.. 와.. 어쩔 뻔했냐고 잃어버렸으면.. 한국 진짜 너무 멋져. 와.. 진짜.. 진짜.. 내가 그래도 착하게 살아와서 이렇게 도와주나 보다..> 흥분을 가라앉히지도 못한 채 난리법석이다.
그리고는 인도네시아 비자, 긴급연락처들 그 외 중요한 내용들을 카톡으로 내게 보낸다. 혹시 또 모르니..
난 휴대폰은 늘 가방에 넣고 다녀서 잘 잃어버리지 않는데 남편은 벌써 몇 번째인지..
그나저나 이렇게 되돌아오게 도와준 대한민국은 참 좋은 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