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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기근을 구하는 기도

by 손수제비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선지자 중 인기투표를 한다면 세 손가락 안에 들 사람 중 하나는 엘리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미션을 마치고 산 채로 하늘로 소환되는 장면이나, 비를 내려달라는 갈멜산에서의 전투는 너무나 유명하다. 비록 이세벨의 찰지고 강렬한 협박으로 엘리야는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달라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엘리야의 카리스마는 강하게 남아있다.


엘리야는 3년간 기근을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의 내용만을 본다면 이 기도는 이스라엘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국가와 국민 모두를 파멸시키는 쪽이다. 농경과 목축 위주의 삶에서 비의 부재는 제대로 된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만든다.


이 기도는 당장은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기도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백성을 살려달라는 외침이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고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백성이 이방의 신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기에, 죽음과 멸망의 고통을 통해서라도 백성들이 하나님께 다시 돌이키기를 간절히 구했던 것이다.


이런 - 기근을 달라는 - 기도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기복신앙에 익숙하고 교회와 세상이 딱히 구별이 되지 않는 요즘 느끼는 것은, 세상이 바라는 미래와 개신교 신자인 우리가 구하는 기도가 동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이 아닌 잘 벌고 잘 먹는 삶,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이 아닌 내가 원하는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우리에게 익숙하다.


오전 설교시간에 들은 샘플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성공을 위한 기도이다. 자녀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기보다는, 무조건 좋은 대학과 좋은 회사에 가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양육하는 삶의 태도이다. 20대 사망자의 절반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몸과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 있고, 이런 상태가 지속될 경우 사회는 더 병들어 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근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공부 잘하는 아이, 돈 잘 버는 청년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아이가 되게 해 달라고. 믿음이 바로 서지 않은 상태라면 취업이 아닌 광야와 같은 훈련의 삶을 허락해 달라고.


둘째, 교회에 대한 기도이다. 많은 교회들이 힘을 잃어간다. 돈 앞에서는 크리스천도, 목사도, 모태신앙도 별 수 없다. 더 큰 교회, 양적인 성장, 더 많은 헌금을 얻을 수 있는 것에 혈안이 되어 그것이 우선순위가 되었을 경우 기근을 위한 기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셋째, 믿지 않는 가정의 경우이다. 이 예시가 가장 충격적이었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우리 교회에도 믿지 않는 가정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지체가 있다. 이들이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지금처럼 아무 문제 없이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가정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한다면, 앞으로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거라는 말을 들었다.


조금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들은 기근을 달라는 기도를 다음과 같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고통과 아픔과 상실까지도 가족의 구원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고난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을 불쌍히 여기신다면, 지금의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완전히 깨뜨려서라도, 우리 가정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근을 달라는 기도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2가지 이유로 인함일 것이다.


첫째, 지금의 상황에 안주하기 때문이다. 먹고살만하고, 아프거나 큰 걱정거리가 없는데, 굳이 고난과 핍박을 받아가면서 까지 기근을 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세상과 구별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음을 반증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삶이 아닌, 내가 즐거워하는 삶이 지속되기를 원한다면 지금도, 앞으로도 기근을 구하는 기도를 할 가능성은 없다.


둘째로, 자신이 온전한 죄인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은 더 낫다고, 이 정도 믿음이라면 어느 정도는 의인의 삶을 살 거라고 자만하기 때문이다.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는 것이 아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는 삶을 살게 할 가능성이 높다.


모태신앙인 내 아이라면 일단 공부부터 해도 될 것이라는, 새벽기도로 무장한 우리 교인들이라면 교회 자산이 수백억이 있어도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을 거라는, 지금은 비록 내 부모가 예수를 믿지 않지만 내가 성공하면 언젠가는 교회로 올 거라는, 아무런 근거도 없고 성경적이지도 않은 교만한 생각들로 이어질 것이다.


내 삶을 돌아본다.


내 기도의 방향은 어떠한가.


나는 기근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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