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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아닌 '성장'이 목표인 선생님의 수학 공부 이야기

책 <누가 선생님이 편하대>를 읽고

by 손수제비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피해 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사교육이다. 학업 보충을 위해서든, 친구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든, 학교 공부 이외에 다른 것을 배우기 위해서든 많은 아이들이 학원을 찾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학원을 가는 좀 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구조로 인함이라 생각한다. 대출원리금 상환, 높은 물가, 이를 위해 맞벌이가 강요되는 사회에서 부모는 돌봄의 주체가 아닌 노동자로서 살아간다. 방과 후 자녀가 홀로 방치되어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라도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는 부모가 많다.


자녀들이 학원에 보내달라는데 돈 때문에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모든 게 불확실한 삶에서 공부라도 잘해야 조금이라도 풍요로운 미래가 보장될 거라는 막연함을 떨치기가 힘들다. 각자의 사정을 갖고서 오늘도 누군가는 학원 문을 두드린다.


IE003494697_STD.jpg 책 <누가 선생님이 편하대> 표지 ⓒ 미문사



책 <누가 선생님이 편하대>(2024년 6월 출간)는 수학을 좋아해서 학원을 차린 강사이자 원장이 쓴 책이다. 평소 사교육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 아니기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왜 집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누가 선생님이 편하대>라는 책의 제목에서 왠지 모를 억울함과 분노가 느껴져서였을까.


책 곳곳에 익숙한 부산사투리가 있어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학원은 부산이 아닌 전라도 목포에 있다고 한다. 부산에서 차로 4시간 정도 떨어진 전라도에서 왜 학원을 운영하는지 정확히 나와있지는 않지만(아마도 배우자가 목포 사람이라서이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한적한 곳에서 투룸을 개조해서 학원을 운영하는 저자의 삶에서 예사롭지 않은 열정이 느껴졌다.


수학은 재미없지만 수학을 가르치는 교사의 삶은 재미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한 번쯤 나올 법도 한데, 2~3장으로 구성된 챕터들은 모두 '기승전수학'이라는 투박하면서도 확고한 구조를 고수했다. 왜 수학을 좋아하게 됐는지, 아이들이 수학을 잘하기 위해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학원 운영주체로서 어떻게 경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과 고민이 책 곳곳에 배어 있었다.


하루 4시간만 자면서 혼자 학원을 운영하기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며 낯선 땅에서 사는 삶은 어떨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지금도 시행착오를 겪어갈 그녀가 내심 부러웠다. 어려서부터 함께해 온 수학을 끝까지 놓지 않고 업으로 삼고 있으니. 소득의 크기나 업무 환경을 떠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늘 부럽다.


저자가 처음부터 수학을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해 자존감이 낮았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사랑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수학을 택했다. 친구들이 관심을 갖고 할머니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높은 성적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더 자라 갔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하면 나를 찾게 되니까. 작아지는 자존감만큼 인정 욕구는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인정 욕구는 다시 '열정'이라는 이쁜 단어로 포장되었다. - 213p


그녀는 스스럼없이 자신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라 밝힌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미워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실행함으로써 삶을 업그레이드시켜 나간다. 무수한 실패들이 하나의 과정임을 인정하면서.


자존감이 낮기에 내가 직접 움직일 수밖에 없는 열정을 얻었다. 똑똑하지 못한 나는 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하자고. 결국 그건 내가 움직이는 거였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니 움직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다.

나는 그렇게 뻔뻔함과 추진력을 얻었다. 거리낌 없이 목표가 생기면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나의 실패에 사람들이 나를 가볍게 보기도 하겠지만 그건 결국 과정일 테니까. 나를 가볍게 보던 사람들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나의 모습을 본다면 적어도 응원해 주지 않을까.

나는 자존감이 낮기에 우연이나 행운에 기대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시험을 잘 치려면 운도 따라 줘야 한다고. 어린 시절 나는 운이 없는 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격지심이 심했기에 운도 필요 없을 만큼 실력을 키우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운'만큼 돌박적인 변수가 어디 있나. '운'이 끼어들 자리조차 없게 노력으로 메워 버리자는 각오를 한다. p214, 215


그녀는 아이들의 성적이 아닌 '성장'이 목표라고 한다. 단순한 문제 풀이와 성적 향상을 바라지 않고 자신만의 확고한 수업 철학이 있기에, 그녀의 학원을 방문한 뒤 실제로 강의를 듣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의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진심이 느껴졌다. 학원의 외적인 성장보다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들과 소통하며 아이들은 물론 자신도 성장해 가는 모습에서 진정 자신의 업을 즐길 줄 아는 프로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아이들이 공부에 대해 어떤 태도나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원생들이 얼마나 많은 압박을 받는지, 이들을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또한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이 아닌 학부모의 생각도 엿볼 수 있었다. 같은 공간을 살아가지만 부모와 자녀의 생각과 시선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간의 대화와 이해를 통해 이 간극을 좁혀나가야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많은 부모와 자녀가 학업에 있어서 갈등을 겪는 이유이다.


글쓴이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상처를 받거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처할 때가 많다. 그녀는 때로 넘어지기도 하지만, 자신만의 여전한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하고 가르친다.


부모와 자녀는 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다른 시간을 산다. 부모의 시간에서 바라보는 관점과 자녀의 시간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많은 것이 다르다. 그로 인해 생기는 오해는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조금씩 물들어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잠식한다. 그래서 늘 자녀는 부모의 시간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부모를 이해하고 그리워한다. 자녀의 시간을 지나쳐왔던 부모조차도 자식의 시간 관점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p129


IE003494698_STD.jpg 8살 둘째가 집에서 수학 문제집을 풀고 있다. ⓒ손수제비



목포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그녀에게 해남에서 과외를 요청하는 학부모가 있었다고 한다.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싶지만 동네에 학원이 없어 보낼 수가 없다는 이유로. 적지 않은 금액임에도 그녀는 결국 과외를 승낙하지 못했다.


대신 '인스타 수업 영상' 제작을 통해 학원접근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한다. 학원 강사이자 운영자인 백지하씨는 평등한 교육을 꿈꾼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든 필요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녀는 아이들과 자신의 성장을 함께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어서일까. 책에서 밝혔듯, '인근 학원보다 수강료가 비싸다'라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아이들을 단순히 돈으로 보지 않는 선생님, 아이들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하며 자기계발을 꾸준히 하는 선생님, 자신이 만든 원칙을 지키며 때로는 거절할 줄 아는 선생님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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