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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영원에 빚을 져서>를 읽고

by 손수제비

나이가 들수록 편한 게 최고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잘생기고 능력 있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친구보다 그저 맘 편한 친구가 제일 좋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인간관계에 기 빨리는 나를 발견한다. 불특정 하고 얕은 다수보다 깊고 친밀한 소수와의 관계를 선호한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인지도 모를 수많은 연락처를 싹 한번 정리하고 싶은데 그마저 귀찮아 그냥 둔다.


사람을 사귀는데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누군가를 쉽게 싫어하지 않지만 쉽게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열면 그 사람과 최대한 친밀하게 지내려 한다. 내 삶에서 책과 음식과 노래가 소중한 것처럼 사람 또한 그러하기에.


꾸준히 연락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언제든 전화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끄집어내어 보일 수 있는 사람, 늦은 시각이지만 잠시라도 나에게 온전히 귀를 기울여 주는 사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싶은 사람, 그런 사람은 언제나 소중하다.


웬만큼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평생 이 사람과는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으며 남은 삶을 함께 걸어가는 벗으로 지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얄팍하고 부서지기 쉬운지 새삼 느낀다. 책 <영원에 빚을 져서> (현대문학, 예소연, 2025)는 (내가 가깝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와의 관계가 생각처럼 온전하지도, 견고하지도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공감한다는 게,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게 결국 '나'라는 인격 안에서 진행되는 부분적인 과정이기에, 내가 친밀함을 느끼는 것 또한 내가 익숙하고 좋아하는 영역 안에서만 용납된다. 영혼은 물론, 머리부터 발 끝까지 서로 다는 개개인이 서로에게 공감한다는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은 아닐까.


40 평생 봐온 가족, 20년을 함께한 아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들, 때로는 가족보다 더 친밀한 몇 안 되는 친구들. 이들과의 관계를 한번 되돌아본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있을 때만 유지되는 관계는 아닌지. 수많은 추억을 공유하고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해서 막연하게 친밀하다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짧은 소설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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