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요청으로 집에 도마뱀을 들이고 느낀 점
자녀들이 바라는 건 뭐든 다 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확실히 선을 긋는다. 물론 '이건 다 너희들을 위해서야!'라는 사랑이 담긴 말을 담아서. 평소 웬만하면 아이들은 내 말을 잘 듣는 편이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단호한 기세가 느껴졌다.
"나도 강아지 키우고 싶어! 내 친구는 아파트에 살아도 잘만 키운단 말이야!"
"시끄러워! 아빠가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단호하고 엄중한 가장의 발언에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전혀 감응하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우리 집에 반려동물을 들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글도 썼다(관련기사 : 미안하지만 반려견은 아니된다). 그 글을 딸아이한테 보여줬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글을 읽던 딸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불청객의 등장>
수개월의 협의 끝에 결국 도마뱀 두 마리를 집으로 들였다. 시끄럽지 않고 비용이 많이 들지 않으며, 심지어 귀엽고 삶에 활력까지 준다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논리로 아이들은 도마뱀과의 동거를 합리화했다. 꿩 대신 닭이라더니, 강아지 대신 도마뱀이 왔다.
신경 쓸 게 하나 더 늘어나서 귀찮고 피곤한 아빠와는 달리, 아이들은 미리 생각해 둔 이름을 지어주며 도마뱀들과 금세 친해졌다. 제 손으로 직접 집을 꾸며주고 먹이를 줬다. 녀석들은 '모어닝 게코'라는 소형 도마뱀이었다. 아무런 관심도 없던 나에게 딸아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도마뱀에 대한 설명을 줄줄 읊어댔다.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내 마음속에 찝찝함이 피어올랐다.
'저것들 뒤치다꺼리는 결국 부모 몫일 텐데!'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고가 터졌다. 도마뱀들이 벽의 숨구멍을 통해 집을 탈출한 것. 밖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사태 파악이 되었다. 작은 데다가 빠르기까지 한 녀석들을 찾을 생각에 벌써부터 앞이 깜깜해졌다.
새 친구를 잃었다는 충격에 아이들은 통곡했다. 도마뱀을 키워본 적이 없고 잃어버린 도마뱀을 찾아본 경험은 더더욱 없기에, 즐거운 주말 오후 우리 가족은 순식간에 멘붕이 되었다. 우리가 의지할 것은 인터넷밖에 없었다. 검색을 해보니 '도마뱀 실종사건'은 꽤나 흔했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이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실종된 녀석들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들었다.
그렇게 전례 없는 공부가 시작되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녀석들을 찾아야 했기에. 도마뱀은 보통 야행성이고 빛을 싫어한다. 도마뱀이 사라진 시간은 한낮이었는데, 예상 가능한 곳을 살펴본 이후 밤에 다시 찾아야 할터였다.
먹이를 둔 곳에서, 책상 위에서, 책상 서랍이나 옷장등 다양한 곳에서 잃어버린 도마뱀을 발견했다는 후기를 읽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찾았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녀석들은 코빼기도 안 비췄다.
워낙 작아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데려온 지 48시간이 채 안 됐는데 이별이라니. 슬프다기보다는 화가 났다. 이번에 못 찾으면, 앞으로 두 번 다시 도마뱀의 ㄷ자도 꺼내지 말라고 아이들에게 버럭 호통쳤다.
이사한 뒤 처음으로 침대를 들어냈다. 책상과 옷장 전체를 다 뒤졌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땀을 뻘뻘 흘리며 대청소를 했다. 곳곳에 먹이를 분산해 놓고 유인했다. 야심한 새벽에 손전등을 켠 채 도둑처럼 내 집을 수색했다. 하지만 도마뱀은 어디에도 없었다.
짜증과 분노가 체념과 포기로 변해갈 즈음이었을까. 다음날 저녁 도마뱀은 딸아이 책상에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에 잘못 봤나 했는데, 다시 봐도 도마뱀이었다. 소리라도 질렀다가는 어떤 일이 발생할지 예상이 되었기에, 조용히 한 마리를 포획했다.
남은 한 마리도 근처에 있었다. 생애 첫 실탄 사격을 할 때의 집중력으로 호흡마저 멈춘 뒤 나머지 한 마리도 잡아넣었다. 온 가족이 환호했다. 코딱지만 한 것들이 감히 우리 가족을 들었다 놨다 하다니.
"이건 또 뭐야!"
소파 옆에 못 보던 통이 또 생겼다. 도마뱀을 한 마리 더 들였단다. 아빠는 어차피 허락을 안 해줄 것이 뻔하다며 자녀들에게 '통보'를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이 집의 가장인데!
새로 온 녀석은 '크레스티드 게코'란다. 소심하고 내 눈을 피해 다니는 앞의 두 녀석과는 달리, 이 녀석은 뭔가 활발해 보였다. 안전상의 이유로 처음 들인 두 마리와는 따로 지내야 한단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두 마리면 될 것을 굳이 불편하게 왜 또 데리고 왔냐고 폭풍 잔소리를 하는 나에게, 8살 아들은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당당하게 외쳤다.
"아빠, 걔네들은 핸들링이 안 되잖아!"
어느새 내 손목 위에 앉아 커다란 눈을 끔뻑이는 크레스티드 게코와 마주한다. 우리는 과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색한 동거의 시작>
소파 옆에 당당히 보금자리를 마련한 도마뱀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진다. 가장인 나도 내 방이 없는데, 감히 돈도 안 내고 내 집을 점유하다니!
줄어드는 물리적인 공간만큼 자녀들과의 관계도 멀어지는 건 아닐까? 부모로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과의 친밀감이다. 올해 1학년, 4학년인 딸과 아들은 아직 나를 좋아하지만(그렇다고 믿고 싶지만), 만약 도마뱀들이 아이들의 사랑을 독차지라도 한다면 아빠와의 관계가 위태로워 질지도 모른다. 경쟁은 회사에서만 사용하는 용어인 줄 알았는데, 인간이 아닌 도마뱀을 의식하게 될 줄이야.
녀석들과 동거한 지 100일이 지났다. 우려(?)와는 달리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초반의 탈출소동 이후 녀석들의 집 외벽을 촘촘한 철조망으로 보수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분실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도마뱀과 함께하는 삶은 생각보다 번거롭지 않았다. 먹이를 주는 것 말고는 크게 손이 갈 일이 없다. 계속 보니 살짝 귀여운 것 같기도 하다. 퇴근하면 녹초가 되어 아무런 의욕이 없는 나에게, 녀석들은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자그맣고 새로운 자극을 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도마뱀을 무척 좋아한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녀석들과 눈을 맞춘다. 틈만 나면 도마뱀을 꺼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관찰한다. 딸아이 방에 있는 모어닝게코는 스트레스에 취약하다고 해서 잘 꺼내지 않지만, 거실에 있는 크레스티드 게코의 경우에는 나도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
아이들은 도마뱀으로 인해 새로운 즐거움을 누리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빠를 소홀히 대하지도 않는다. 지질한 아빠의 우려와는 달리, 아이들은 여전히 나를 아끼고 사랑한다.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아직 이 녀석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는 녀석들에게 조금은 더 마음을 열어도 될 것 같다. 우리의 평화로운 동거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