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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제비 May 19. 2024

소명의식은 무슨

빈껍데기만 남은 삶

약 10년 간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SFC(학생신앙운동) 활동을 했다. SFC는 학생신앙운동(Student for christ)이라는, 기독교 동아리의 한 종류이다.


고등학생 때는 매주 지역별로 모여 예배를 드리고 제자훈련을 받았다. 대학생 때는 매일 아침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나누며, 매주 예배들 드리고 공동체를 섬기는 등 삶에 많은 영역에 하나님과 예배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20대는 내 삶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다양한 경험을 하며 부모님 도움이 아닌 내 손으로 땀 흘려 번 돈으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때로는 강제적이기도 했지만) 매일의 묵상, 매주 함께하는 예배는 내가 대학생으로서의 신분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자녀, 백성으로서도 바르고 온전히 살아가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했다. 상처와 아픔을 겪었지만 어떤 힘듦도 잘 견딜 수 있었다. 예배와 공동체가 건강한 한, 삶은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했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삶은 빠르게 변해갔다. 말씀묵상과 예배 대신 끝도 없는 업무가 내 삶을 가득 채웠다. 삶을 나누고 눈물로 중보 하는 공동체가 아닌 탐욕과 갑질로 가득한 인간관계만 남았다. 내 삶을 온전히 채우던 것들이 사라지면서 나는 빠르게 생명력을 잃어갔다.


실적을 위해서라면, 조직의 성장을 위해서라면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때로는 해서는 안 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고민하고 실행을 멈추는 순간 내 자리는 내가 아닌 다른 이로 즉각 대체될 것이기에.


학생신앙운동 생활을 하며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개혁주의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어떤 (더럽고 죄가 가득한) 곳에서도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야 한다고. 내가 있는 그곳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일하시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 믿음과 신앙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인다. 자주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우울과 죽음을 생각한다. 이곳에서 버티고 이곳을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꾸어 나가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아 보인다.


기도를 많이 하지는 않지만(자랑이다!) 요즘 자주 아버지에게 간구한다. 이곳에서는 자체가 불가능하니, 내가 더 강해지게 해 주든지 아니면 새로운 일터를 허락해 달라고. 자꾸만 삶이 아닌 죽음을 생각하지 않게 해달라고.


모든 게 별로지만 직장생활 중 가장 최악인 것은 주일을 온전히 지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아니, 주일은커녕 한 시간 남짓한 예배시간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휴일과 일요일도 업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에. 이런 삶이 10년 넘게 지속되다 보니 예배에 대한 집중력이 사라지는 것 같다. 예배를 통한 감격도, 기쁨도, 회복도, 열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런데 이런 기도의 방향이 선하고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결국 누군가는 이 공간(회사)을 바꾸어 나가야 할 텐데. 죽음과 죄악과 탐욕만 가득한 이곳에서도 누군가는 하나님나라의 향기를 전파해야 할 텐데.


하지만..  일단 내가 살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죽어버리면 이런 고민조차 불가능할 터이니. 하나님, 대체 어디 계십니까. 매일이 너무 빡세고  킹 받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는 삶입니다. 내일 또 출근할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꿈에서도 괴롭힘을 당하는 거 아시잖아요.


제발 좀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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